하느님은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 하시는 말씀은 미숙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셨지요. 결국 예수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으로, 말씀으로 하느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을 가르치셨지요. 하지만 여전히 미숙한 우리들은 그것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십니다. 당신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방법이었지요.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하지만 이는 하느님의 무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지요.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드님은 인간들의 죄악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듯 싶었지만 사흘만에 보란듯이 부활하고만 것입니다. 죽음 자체가 무너져버린 것이지요.
이제는 더는 겁을 낼 대상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오직 한 분, 하느님 외에는 우리는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죽음을 없애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는 그 누구라도 영원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된 이들에게 더는 죽음의 위협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 사랑 가득한 말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오늘 작은 씨앗이 되어 성모님에게 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얼마나 기쁜 날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말씀이 육신을 취하시어 내려오시기로 약속 받은 날이니까요. 작은 성탄의 날입니다. 왜냐하면 탄생은 이미 ‘잉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제 얼굴에서 어두움을 걷어 내시고 기쁨을 살아 가십시오. 아드님이 세상에 빛이 되어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희망을 품고 믿음 안에서 서서히 고개를 드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가까이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으로, 말씀으로 하느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을 가르치셨지요. 하지만 여전히 미숙한 우리들은 그것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십니다. 당신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방법이었지요.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하지만 이는 하느님의 무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지요.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드님은 인간들의 죄악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듯 싶었지만 사흘만에 보란듯이 부활하고만 것입니다. 죽음 자체가 무너져버린 것이지요.
이제는 더는 겁을 낼 대상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오직 한 분, 하느님 외에는 우리는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죽음을 없애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는 그 누구라도 영원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된 이들에게 더는 죽음의 위협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 사랑 가득한 말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오늘 작은 씨앗이 되어 성모님에게 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얼마나 기쁜 날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말씀이 육신을 취하시어 내려오시기로 약속 받은 날이니까요. 작은 성탄의 날입니다. 왜냐하면 탄생은 이미 ‘잉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제 얼굴에서 어두움을 걷어 내시고 기쁨을 살아 가십시오. 아드님이 세상에 빛이 되어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희망을 품고 믿음 안에서 서서히 고개를 드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가까이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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