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기를 샀습니다. 물론 제 장난감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본당용으로 샀습니다.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제가 어린 시절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꿈을 이루고 마는 셈이네요.
제가 하느님에 대해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하느님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할 때에는 그것을 좀처럼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보통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의 욕구와 뒤섞여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가 간절히 원할 때에 그것을 얻으면 그는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운전을 해 보겠다고 떼를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빠는 절대로 운전대를 쥐어주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누군가의 원을 들어줄 때는 그가 ‘준비되었을 때’입니다. 그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온전히 이루어낼 수 있을 때에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식별’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요.
‘성소’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소의 길은 누군가 자기 스스로 간절히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 길에 준비되었을 때에 비로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원해서 신학교나 수녀원에 들어간 사람이 결국 그 길을 수용하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성되어 시작하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식별의 과정은 진정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고 우리에게 꾸준하고 충분한 인내심만 있다면 하느님은 필요한 때가 되면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하십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원하는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때는 하느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해야 하는 것은 ‘하늘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직 그것을 선물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계속됩니다. 완성에 이를 그날까지 말이지요. 그리고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순간에 그 일은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하느님에 대해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하느님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할 때에는 그것을 좀처럼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보통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의 욕구와 뒤섞여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가 간절히 원할 때에 그것을 얻으면 그는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운전을 해 보겠다고 떼를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빠는 절대로 운전대를 쥐어주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누군가의 원을 들어줄 때는 그가 ‘준비되었을 때’입니다. 그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온전히 이루어낼 수 있을 때에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식별’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요.
‘성소’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소의 길은 누군가 자기 스스로 간절히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 길에 준비되었을 때에 비로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원해서 신학교나 수녀원에 들어간 사람이 결국 그 길을 수용하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성되어 시작하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식별의 과정은 진정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고 우리에게 꾸준하고 충분한 인내심만 있다면 하느님은 필요한 때가 되면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하십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원하는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때는 하느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해야 하는 것은 ‘하늘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직 그것을 선물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계속됩니다. 완성에 이를 그날까지 말이지요. 그리고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순간에 그 일은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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