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루카1,59-60)
두 권위가 상충될 때에는 보다 상급 권위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법적 공방에서도 지방 법원에서 판결이 난 것이 상급 법원에서 그 결과가 뒤바뀌기도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과 하느님의 명을 받은 이의 작은 충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마땅히 아버지의 이름을 따는 것인데 이 아기의 어머니가 당시로서는 여자의 몸으로 획기적인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지요. 어머니는 하느님이 명하신 대로 이행하기 위해서 친족들의 전통에 반발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이어지는 즈카르야의 선언으로 금세 끝나버리고 말지만, 실제적인 우리의 삶 안에서는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전통은 어딜 가나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인간들이 만든 전통들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때로는 그 전통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상충되기도 합니다. 그 경우에 언제나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세 부류라고 할 수 있겠네요.
1)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인간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이들(대부분의 사람들).
2)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전통을 깨려는 이들(이기적인 마음).
3)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려는 이들(복음의 요한의 어머니와 같은 이들 - 극소수).
인간의 전통은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이들에 의해서 깨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어른들에게 드리던 문안인사는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 아이를 낳으면 문간에 내어달던 금줄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신주단지가 원지 모르는 아이들이 수두룩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절대로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 사이에 평화와 일치, 화목, 신의, 절제, 사랑, 인내가 있기를 바라셨고 이는 여전히 단 하나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 때로는 하느님의 전통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곤 합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처참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때가 이르면 그들은 다시 고개를 들게 될 것입니다.
두 권위가 상충될 때에는 보다 상급 권위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법적 공방에서도 지방 법원에서 판결이 난 것이 상급 법원에서 그 결과가 뒤바뀌기도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과 하느님의 명을 받은 이의 작은 충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마땅히 아버지의 이름을 따는 것인데 이 아기의 어머니가 당시로서는 여자의 몸으로 획기적인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지요. 어머니는 하느님이 명하신 대로 이행하기 위해서 친족들의 전통에 반발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이어지는 즈카르야의 선언으로 금세 끝나버리고 말지만, 실제적인 우리의 삶 안에서는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전통은 어딜 가나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인간들이 만든 전통들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때로는 그 전통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상충되기도 합니다. 그 경우에 언제나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세 부류라고 할 수 있겠네요.
1)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인간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이들(대부분의 사람들).
2)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전통을 깨려는 이들(이기적인 마음).
3)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려는 이들(복음의 요한의 어머니와 같은 이들 - 극소수).
인간의 전통은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이들에 의해서 깨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침에 어른들에게 드리던 문안인사는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요. 아이를 낳으면 문간에 내어달던 금줄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신주단지가 원지 모르는 아이들이 수두룩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절대로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 사이에 평화와 일치, 화목, 신의, 절제, 사랑, 인내가 있기를 바라셨고 이는 여전히 단 하나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 때로는 하느님의 전통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곤 합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처참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때가 이르면 그들은 다시 고개를 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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