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 (루카 4,33)
무엇보다도 알아야 할 것은 ‘마귀’의 분명한 존재입니다. 세상 안에는 어둠의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며 실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시화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때로는 그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마귀는 자신의 존재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을 최고의 상태로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들이 보다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더러운 마귀의 영의 활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귀들에게는 최고의 전성기인 셈이지요.
무엇이 마귀의 활동일까요? 간단합니다. 인간을 하느님과 그분의 거룩함에서 떼어놓으려는 모든 활동입니다. 우리가 늘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에도 그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고 무심코 듣는 음악 안에도 그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거룩해 보이는 활동’ 안에서도 그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굉장히 영리합니다. 지혜롭지는 않지만 지적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서 인간보다 상당히 영리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속아넘어가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귀는 자신을 추악한 존재로 내세우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당장 사람들에게 내치임을 당할 테니까요. 마귀는 자신을 아름답고 선한 존재로 내비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 수단은 드러나는 활동이지요. 그들이 이용하는 방법은 정말 영리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좋고 선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들은 정의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고 증오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거룩한 활동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분별없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엉뚱한 곳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듭니다. 성경 안에는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 분쟁과 율법 논란”(1티모 1,4)이라고 표현됩니다.
실천적으로 해결 해야 하는 과제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사람들은 득도 되지 않는 어리석은 논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가 없는가는 호기심의 대상이지 그것을 안다고 또는 모른다고 우리의 삶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기보다 자신의 활동 프로그램 차수가 몇 차인지를 더 소중히 여기는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자신의 레지오가 몇 차를 채우고 있는지, 꾸르실료와 청년 성서 모임 차수가 몇 차인지... 이런 것들도 모두 족보 이야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곧잘 분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군요. 지금도 모든 공동체 안에서 꾸준히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마음을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로 모으지 못하고 서로 갈라져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 삶은 전혀 변화시킬 생각이 없으면서 공연히 교회 안의 복잡한 교회법 논란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의 형제 하나 사랑하지 못하면서 금육재를 어떻게 지키는 게 맞는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은 ‘율법 논란’에 사로잡힌 이들인 셈이지요.
조금만 영적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무엇이 마귀의 짓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으로 ‘지혜’가 부족합니다. 무엇이 먹어야 할 영적 음식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먹어대고는 합니다. 특히나 소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나서는 정말 엉뚱한 게시물들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그것들을 공유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육신의 건강만을 걱정하게 만드는 수많은 게시물들, 성공에 집착하게 만들어 명예욕에 사로잡히게 하는 게시물들, 탐욕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돈벌게 도와준다는 게시물들, 하느님만이 알고 계시는 미래의 여러가지 일을 미리 앞당겨 알려 준다는 변형된 점괘 프로그램들, 색깔, 이름 등등으로 나의 심리와 성격을 파악하게 해 준다는 엉뚱한 자가진단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 안에는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호기심에 그러한 것들을 모두 건드려 보고는 있는대로 자신의 담벼락에 공유를 하곤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신의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잘 돌보며,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돈은 필요에 의해서만 사용하고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현재에 충실하여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엉뚱한 프로그램을 빌려 나의 나약함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성찰하며 솔직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예견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악을 저지르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선량한 이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을 말씀하셨지요.
그 때에는 사람들이 너희를 잡아 법정에 넘겨 갖은 고통을 겪게 하고 마침내는 사형에 처하게 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것이며 거짓 예언자가 여기 저기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 세상은 무법 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마태 24,9-12)
마귀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 존재가 가리워져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활동에 속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제발 분별력을 키우십시오. 모든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증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자를 함부로 믿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서로 일치하는 자녀가 되십시오.
무엇보다도 알아야 할 것은 ‘마귀’의 분명한 존재입니다. 세상 안에는 어둠의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며 실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시화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때로는 그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마귀는 자신의 존재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을 최고의 상태로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들이 보다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더러운 마귀의 영의 활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귀들에게는 최고의 전성기인 셈이지요.
무엇이 마귀의 활동일까요? 간단합니다. 인간을 하느님과 그분의 거룩함에서 떼어놓으려는 모든 활동입니다. 우리가 늘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에도 그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고 무심코 듣는 음악 안에도 그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거룩해 보이는 활동’ 안에서도 그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굉장히 영리합니다. 지혜롭지는 않지만 지적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서 인간보다 상당히 영리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속아넘어가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귀는 자신을 추악한 존재로 내세우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당장 사람들에게 내치임을 당할 테니까요. 마귀는 자신을 아름답고 선한 존재로 내비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 수단은 드러나는 활동이지요. 그들이 이용하는 방법은 정말 영리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좋고 선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들은 정의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고 증오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거룩한 활동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분별없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엉뚱한 곳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듭니다. 성경 안에는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 분쟁과 율법 논란”(1티모 1,4)이라고 표현됩니다.
실천적으로 해결 해야 하는 과제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사람들은 득도 되지 않는 어리석은 논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가 없는가는 호기심의 대상이지 그것을 안다고 또는 모른다고 우리의 삶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기보다 자신의 활동 프로그램 차수가 몇 차인지를 더 소중히 여기는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자신의 레지오가 몇 차를 채우고 있는지, 꾸르실료와 청년 성서 모임 차수가 몇 차인지... 이런 것들도 모두 족보 이야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곧잘 분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군요. 지금도 모든 공동체 안에서 꾸준히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마음을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로 모으지 못하고 서로 갈라져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 삶은 전혀 변화시킬 생각이 없으면서 공연히 교회 안의 복잡한 교회법 논란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의 형제 하나 사랑하지 못하면서 금육재를 어떻게 지키는 게 맞는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은 ‘율법 논란’에 사로잡힌 이들인 셈이지요.
조금만 영적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무엇이 마귀의 짓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으로 ‘지혜’가 부족합니다. 무엇이 먹어야 할 영적 음식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먹어대고는 합니다. 특히나 소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나서는 정말 엉뚱한 게시물들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그것들을 공유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육신의 건강만을 걱정하게 만드는 수많은 게시물들, 성공에 집착하게 만들어 명예욕에 사로잡히게 하는 게시물들, 탐욕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돈벌게 도와준다는 게시물들, 하느님만이 알고 계시는 미래의 여러가지 일을 미리 앞당겨 알려 준다는 변형된 점괘 프로그램들, 색깔, 이름 등등으로 나의 심리와 성격을 파악하게 해 준다는 엉뚱한 자가진단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 안에는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호기심에 그러한 것들을 모두 건드려 보고는 있는대로 자신의 담벼락에 공유를 하곤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신의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잘 돌보며,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돈은 필요에 의해서만 사용하고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현재에 충실하여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엉뚱한 프로그램을 빌려 나의 나약함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성찰하며 솔직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예견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악을 저지르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선량한 이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을 말씀하셨지요.
그 때에는 사람들이 너희를 잡아 법정에 넘겨 갖은 고통을 겪게 하고 마침내는 사형에 처하게 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것이며 거짓 예언자가 여기 저기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 세상은 무법 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마태 24,9-12)
마귀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 존재가 가리워져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활동에 속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제발 분별력을 키우십시오. 모든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증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자를 함부로 믿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서로 일치하는 자녀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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