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루카 6,46)
많은 교회의 오류가 바로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구체적인 실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고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우리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도 하지요. 상상 속에서 가난한 이에게 다가가서 그를 정성껏 보살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상황이 될 때에 그의 역겨운 냄새와 그의 지저분함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특히 볼리비아에는 ‘거룩한’ 게시물을 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페이스북 담벼락만 보면 마치 성인 성녀라도 탄생한 듯한 인상을 주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게시물을 통해서 방문자를 끌어들이고 그들로부터 자신이 ‘신심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지요. 그들은 전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뿐더로 오히려 다른 탐욕이 가득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말했고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말한 것은 수많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계명으로 모이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를 바랬고, 또 서로 사랑하기를 바랬습니다. 헌데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으며 이웃을 사랑하기는 커녕 증오와 복수심을 다스리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들은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의 오류가 바로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구체적인 실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고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우리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도 하지요. 상상 속에서 가난한 이에게 다가가서 그를 정성껏 보살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상황이 될 때에 그의 역겨운 냄새와 그의 지저분함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특히 볼리비아에는 ‘거룩한’ 게시물을 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페이스북 담벼락만 보면 마치 성인 성녀라도 탄생한 듯한 인상을 주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게시물을 통해서 방문자를 끌어들이고 그들로부터 자신이 ‘신심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지요. 그들은 전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뿐더로 오히려 다른 탐욕이 가득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말했고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말한 것은 수많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계명으로 모이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를 바랬고, 또 서로 사랑하기를 바랬습니다. 헌데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으며 이웃을 사랑하기는 커녕 증오와 복수심을 다스리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들은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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