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에 대한 선언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쾌락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을 말하고 이는 통상적으로 ‘행복’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에 가까운 것이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가난한 사람은 ‘쾌락’을 누릴 수 없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은 ‘쾌락’을 누릴 수 없다.
지금 우는 사람은 ‘쾌락’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꿈꾸면서 행복을 이루어 나갈 수 있고, 또 영원 안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 안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굶주리지만 그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굶주림은 단순한 육신의 굶주림이 아닙니다. 진리와 선에 대한 굶주림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만끽하고 누리게 될 것이며 그것이 이미 다가오는 희망에도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울지만 그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육신의 나약 때문에 울지만 그들은 반드시 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이들은 지금으로서는 쾌락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그들의 쾌락이 메마를 날이 올 것이니 그때에 그들은 모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에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사실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개그 프로를 보면서도 왁자지껄 웃을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이고 평화입니다.
많은 사람은 참된 행복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불안불안하고 조마조마합니다. 늘 불만족스럽고 불평이 가득하지요. 특히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보면 괜히 심통이 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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