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도는 여러가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일어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수난 당하고, 죽고,
그리고 나서 천상의 아버지에 의해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될 예정이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겟세마니의 그 밤에
그는 자신의 운명의 시간이 닥친 것을 알고
바위 위에 엎드려 아버지에게 간구한다.
‘이 잔을 치워 주십시오.’
하지만 그 잔은 피할 수 없는 잔이었고
결국 예수님은 그 잔을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악은 너무나 음험했고
세상 안에서의 그 힘은 너무나 강해 보였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들은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지혜로웠던 예수님은
그날만큼은 지독히 수동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예수님은 어느 때보다 능동적이었고
자신이 받아들여야 하는 수난을 온전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 순간에 더는 가르치지 않으셨다.
거룩한 것은 개들에게는 던지지 않는 법이니까.
악인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고
헤로디아가 자신의 증오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얻은 것처럼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권력가들은
이날만큼은 마음껏 자신들의 악의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못박았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를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악인들에 맞서서 그 생명을 나누어주고 계신다.
진정으로 죽을 사람들은 악인들이다.
그들은 육신도 죽고, 영혼도 멸망할 족속들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들이여,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느님이 나의 곁에 계시는데
누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도는 여러가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일어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수난 당하고, 죽고,
그리고 나서 천상의 아버지에 의해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될 예정이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겟세마니의 그 밤에
그는 자신의 운명의 시간이 닥친 것을 알고
바위 위에 엎드려 아버지에게 간구한다.
‘이 잔을 치워 주십시오.’
하지만 그 잔은 피할 수 없는 잔이었고
결국 예수님은 그 잔을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악은 너무나 음험했고
세상 안에서의 그 힘은 너무나 강해 보였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들은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지혜로웠던 예수님은
그날만큼은 지독히 수동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예수님은 어느 때보다 능동적이었고
자신이 받아들여야 하는 수난을 온전히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 순간에 더는 가르치지 않으셨다.
거룩한 것은 개들에게는 던지지 않는 법이니까.
악인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고
헤로디아가 자신의 증오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얻은 것처럼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권력가들은
이날만큼은 마음껏 자신들의 악의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못박았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를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악인들에 맞서서 그 생명을 나누어주고 계신다.
진정으로 죽을 사람들은 악인들이다.
그들은 육신도 죽고, 영혼도 멸망할 족속들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들이여,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느님이 나의 곁에 계시는데
누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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