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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장사와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루카 9,60)

제가 하는 주된 일 중의 하나는 ‘장례’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죽으면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일단 급하게 장의사를 불러서 관을 구하고 시신을 넣고 친지들에게 연락을 한 뒤에 사제인 저를 찾아옵니다.

저는 매 미사 때마다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제발 부탁이니 죽기 전에 저를 찾으라고 말이지요. 왜냐하면 사제의 입에서 나오는 거룩한 가르침은 죽은 이에게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사제의 성사 거행으로 은총을 입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죽고 난 뒤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제를 찾는 기회의 본질적인 의미가 변화되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런 장례의 초대를 받으면 저는 일단 갑니다. 장례의 기회는 가장 좋은 복음 선포의 기회이니까 다른 미사가 있거나 정말 공동선을 위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장례는 결코 빼먹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서 열심히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가르치지요. 그러면 초대받아 온 모든 이들이 귀를 기울이고 듣습니다.

예수님은 장사를 지내겠다는 이에게 ‘너는 가지 말고 나를 따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라’고 하셨습니다. 대신에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고 하셨지요. 그는 장사를 지내는 곳에도 갈 수 있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는 셈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는 가서 성심 성의껏 장사를 지내러 오는 이들에게 하늘나라의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망자를 기억하러 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모시고 불편함이 없이 해 드리면서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비록 가족을 상실한 슬픔에 젖을 수는 있겠지만 영원한 생명 안에서 다시 만날 희망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못된 이들은 아마도 이 구절을 빗대어서는 ‘나는 장사 지내는 곳 따위는 가지 않아’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에 입교하는 적지 않은 이유가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연도’와 정성스러운 장례 예절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장례는 죽은 이를 위한 행사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는 참으로 좋은 수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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