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모르지만 노력하면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알 수는 있지만 몰라도 되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을 지적 호기심이라고 하지요. 좋게 말하면 탐구능력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공연한 호기심이기도 한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을 노력해서 알게 되는 사람은 좋은 의미로 탐구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억지로 알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엉뚱한 곳에 쓰려고 하는 사람이지요. 지나친 호기심은 결국 우리를 일종의 오류로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들,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있는 가운데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신의 지적 능력을 죄짓는 데에다 쓰는 사람들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고 그들을 위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찾으려면 그 일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어젯밤 이웃집의 부부싸움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어서 혈안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자 하는 이유는 그 부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연한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것일 뿐이지요. 그렇게 해서 다른 이들에게 또다른 소문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우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우리를 죄악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는 온갖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늦추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성경 읽기는 싫어하면서 다른 이들을 험담하는 데에 쓰일 요소를 찾아 얻는 데에는 그렇게나 열정적인 것일까요? 그건 바로 우리 안의 영혼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수함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이미 상실해버린 셈이지요.
사실 새로운 것을 더 알아야 할 필요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더한 신학적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한 사실, 하느님을 모든 것을 동원해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알아야 할 것들,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있는 가운데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자신의 지적 능력을 죄짓는 데에다 쓰는 사람들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고 그들을 위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찾으려면 그 일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어젯밤 이웃집의 부부싸움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어서 혈안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자 하는 이유는 그 부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연한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것일 뿐이지요. 그렇게 해서 다른 이들에게 또다른 소문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우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우리를 죄악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는 온갖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늦추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성경 읽기는 싫어하면서 다른 이들을 험담하는 데에 쓰일 요소를 찾아 얻는 데에는 그렇게나 열정적인 것일까요? 그건 바로 우리 안의 영혼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수함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이미 상실해버린 셈이지요.
사실 새로운 것을 더 알아야 할 필요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더한 신학적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한 사실, 하느님을 모든 것을 동원해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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