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에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지요.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그 일을 실천합니다.
선한 나무에서는 선한 열매가 열리고, 악한 나무에서는 악한 열매가 열리게 마련이지요. 선을 내면에 품은 사람은 선을 주변에 흩뿌리고, 악을 내면에 품은 사람은 악을 주변에 흩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스스로 감상하게 되는 거지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온통 자기 자신의 쾌락에만 빠져 있는 이기적인 사람은 훗날 그 보상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특히 볼리비아에는 그런 가정들이 많지요. 자녀들에게 제때 주어야 할 사랑을 주지 않고 온통 자신에게만 집착해 있는 가장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중이 되어서야 그 열매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상당히 늦은 시기이지요. 자녀들의 어린 시절에 이루어졌어야 할 교육들, 특히나 가치들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교육들은 다른 ‘기술’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심리학적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 교육은 바로 부모 자신들의 삶의 모범으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교육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돌봐야 할 시기에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에 사로잡혀 시간을 모두 보내고 난 부모들은 그 시간,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했던 시간을 회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미 자녀들의 마음에는 섭섭함과 앙심이 가득한 셈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내면에 품은 것으로 자녀들을 양육합니다. 훌륭한 내면을 지닌 부모에게서 나쁜 자녀가 나올 수 없고 나쁜 내면을 지닌 부모에게서 훌륭한 자녀가 나올 수도 없지요. 행여 두 배우자 중의 한 명이라도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나마 희망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 선한 마음을 지닌 배우자가 겪어야 할 심적 고통은 적지 않은 것이지요.
신앙이 소중한 이유는, 엉망인 가정이라도 자녀들이 신앙에 다가설 때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모 없이 자라고, 엉망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신앙을 접하게 되면 그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자신이 겪은 어두움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이와 관련해서 실제적인 상황을 많이 관찰하게 됩니다.
영혼 구원에는 ‘늦은 시기’가 없습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올바르게 먹을 수 있다면 다시 하느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예복인 ‘신앙’만을 준비한다면 하늘나라의 잔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자녀 교육은 오직 ‘신앙’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선한 나무에서는 선한 열매가 열리고, 악한 나무에서는 악한 열매가 열리게 마련이지요. 선을 내면에 품은 사람은 선을 주변에 흩뿌리고, 악을 내면에 품은 사람은 악을 주변에 흩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스스로 감상하게 되는 거지요.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온통 자기 자신의 쾌락에만 빠져 있는 이기적인 사람은 훗날 그 보상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특히 볼리비아에는 그런 가정들이 많지요. 자녀들에게 제때 주어야 할 사랑을 주지 않고 온통 자신에게만 집착해 있는 가장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중이 되어서야 그 열매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상당히 늦은 시기이지요. 자녀들의 어린 시절에 이루어졌어야 할 교육들, 특히나 가치들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교육들은 다른 ‘기술’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심리학적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 교육은 바로 부모 자신들의 삶의 모범으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교육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돌봐야 할 시기에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에 사로잡혀 시간을 모두 보내고 난 부모들은 그 시간,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했던 시간을 회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미 자녀들의 마음에는 섭섭함과 앙심이 가득한 셈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내면에 품은 것으로 자녀들을 양육합니다. 훌륭한 내면을 지닌 부모에게서 나쁜 자녀가 나올 수 없고 나쁜 내면을 지닌 부모에게서 훌륭한 자녀가 나올 수도 없지요. 행여 두 배우자 중의 한 명이라도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나마 희망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 선한 마음을 지닌 배우자가 겪어야 할 심적 고통은 적지 않은 것이지요.
신앙이 소중한 이유는, 엉망인 가정이라도 자녀들이 신앙에 다가설 때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모 없이 자라고, 엉망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신앙을 접하게 되면 그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자신이 겪은 어두움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이와 관련해서 실제적인 상황을 많이 관찰하게 됩니다.
영혼 구원에는 ‘늦은 시기’가 없습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올바르게 먹을 수 있다면 다시 하느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예복인 ‘신앙’만을 준비한다면 하늘나라의 잔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자녀 교육은 오직 ‘신앙’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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