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 분쟁과 율법 논란을 피하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무익하고 헛될 뿐입니다. (티토 3,9)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성경적 근거를 댈 수 있고 신학적으로 유추를 통해서 알아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천사에게 날개가 있건 없건 간에 우리가 실제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합리성으로 신앙에 다가서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지성은 앎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갈 수는 있지만 알기만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접 살아야 하는 신앙생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공연한 논쟁을 즐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것이 궁금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가지요.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무익하고 헛된 일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무엇이 무익한지, 무엇이 헛된 일인지 분간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정당성을 주려고 하지요.
우리는 증오하면서 그것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시기하면서 그것을 필요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게 우리는 싸움꾼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무엇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무엇이 진실한 일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힘써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 뿐입니다.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성경적 근거를 댈 수 있고 신학적으로 유추를 통해서 알아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천사에게 날개가 있건 없건 간에 우리가 실제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합리성으로 신앙에 다가서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지성은 앎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갈 수는 있지만 알기만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접 살아야 하는 신앙생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공연한 논쟁을 즐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것이 궁금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가지요.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무익하고 헛된 일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무엇이 무익한지, 무엇이 헛된 일인지 분간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정당성을 주려고 하지요.
우리는 증오하면서 그것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시기하면서 그것을 필요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게 우리는 싸움꾼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무엇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무엇이 진실한 일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힘써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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