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그리 ‘첫째’가 되기를 즐기는 것일까요? 왜 꼴찌가 되면 안되는 것일까요? 첫째가 되면 우선권을 분배 받습니다. 즉 좋은 것을 먼저 즐길 수 있지요. 그리고 첫째가 되면 다른 이들에게 지시할 권리가 생기게 됩니다. 지시라는 것은 나의 짧은 혀로 다른 이들의 몸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요. 즉 첫째가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힘을 통해서 나에게 모든 편의와 안락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덧붙여 명예까지도 제공되지요. 누구나 첫째를 우러러보고 자신도 되고 싶어하니까요. 모든 재화와 권력과 명예가 첫째에게 집중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피라미드의 정점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첫째에 대해서 그런 외적인 인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첫째의 위치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가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째의 자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 뿐이지요. 그래서 나머지 인원들이 모두 첫째의 자리를 노리게 됩니다. 즉, 다툼과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지요. 첫째에 머무르는 사람은 그래서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이들이 잔뜩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첫째의 자리는 유한합니다. 세상 그 어느 첫째도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 다스리거나 머무른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이 허락한 지상의 삶 동안에만 보장되는 것이고 그마저도 자기 자신의 교만과 죄악으로 단축되기 일쑤인 것이지요. 사람들은 첫째를 외적으로만 바라보고 부러워하지만 기실 첫째의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오랜 생을 누리기가 참으로 힘든 자리이지요.
첫째의 재화는 유한한 것이며, 첫째의 권력은 사람들의 증오에 기반한 것이고, 첫째의 명예는 표면적인 것일 뿐입니다. 결국 첫째는 하늘나라의 꼴찌일 뿐입니다. 아니, 그의 지상 생활에서 그가 선행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울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책 안에 쓰여진 황제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유명한 가수를 기억하며 억만장자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마저도 그 유명세로 떠올릴 뿐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꼴찌로 살아가신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약하고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에 태어나셨고 수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첫째에 대해서 그런 외적인 인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첫째의 위치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가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째의 자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 뿐이지요. 그래서 나머지 인원들이 모두 첫째의 자리를 노리게 됩니다. 즉, 다툼과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지요. 첫째에 머무르는 사람은 그래서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이들이 잔뜩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첫째의 자리는 유한합니다. 세상 그 어느 첫째도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 다스리거나 머무른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이 허락한 지상의 삶 동안에만 보장되는 것이고 그마저도 자기 자신의 교만과 죄악으로 단축되기 일쑤인 것이지요. 사람들은 첫째를 외적으로만 바라보고 부러워하지만 기실 첫째의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오랜 생을 누리기가 참으로 힘든 자리이지요.
첫째의 재화는 유한한 것이며, 첫째의 권력은 사람들의 증오에 기반한 것이고, 첫째의 명예는 표면적인 것일 뿐입니다. 결국 첫째는 하늘나라의 꼴찌일 뿐입니다. 아니, 그의 지상 생활에서 그가 선행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울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책 안에 쓰여진 황제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유명한 가수를 기억하며 억만장자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마저도 그 유명세로 떠올릴 뿐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꼴찌로 살아가신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약하고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에 태어나셨고 수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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