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루카 8,10)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비유라는 것은 1차적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초를 통해서 생을 비유하는 표현은 일단 ‘초’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사람들은 초가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때문에 초가 녹는다던지 빛을 낸다던지 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삶’에 대해서 그 의미에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1차적인 의미에 머무르기만 하는 사람은 그 초에서 더는 삶으로 다가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알려고 하는 이’를 분별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비유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설명하려는 본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그 비유를 들으면서 비유 자체의 표면적 의미는 이해했지만 그 비유가 진실로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 의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뜻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보지 않으려 한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눈과 귀에 익숙한 것만 받아들이려 하고 자시의 삶을 건드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꺼려합니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연속극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개선시키는 것을 성가시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미사를 좋아하지만 그 미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보기를 거부하고 듣기를 거부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충분히 보여주었고 들려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길을 찾는 사람이면 부족하지 않게 보여주고 들려 주었습니다. 그들의 지성의 범위가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때로는 그 이상을 넘어서도 보여주고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의 의지가 너무나도 세상을 향해서 돌아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바꿀 계획이 없었고 그런 그들의 무성의함과 무의지가 그들을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디서 공짜 쿠폰 나눠준다는 소식은 기똥차게 잘 듣겠지요.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비유라는 것은 1차적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초를 통해서 생을 비유하는 표현은 일단 ‘초’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사람들은 초가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때문에 초가 녹는다던지 빛을 낸다던지 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삶’에 대해서 그 의미에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1차적인 의미에 머무르기만 하는 사람은 그 초에서 더는 삶으로 다가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알려고 하는 이’를 분별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비유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설명하려는 본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그 비유를 들으면서 비유 자체의 표면적 의미는 이해했지만 그 비유가 진실로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 의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뜻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보지 않으려 한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눈과 귀에 익숙한 것만 받아들이려 하고 자시의 삶을 건드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꺼려합니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연속극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개선시키는 것을 성가시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미사를 좋아하지만 그 미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보기를 거부하고 듣기를 거부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충분히 보여주었고 들려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길을 찾는 사람이면 부족하지 않게 보여주고 들려 주었습니다. 그들의 지성의 범위가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때로는 그 이상을 넘어서도 보여주고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의 의지가 너무나도 세상을 향해서 돌아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바꿀 계획이 없었고 그런 그들의 무성의함과 무의지가 그들을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디서 공짜 쿠폰 나눠준다는 소식은 기똥차게 잘 듣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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