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 사제들이 세르히오 부주교님을 만나서 사제들의 임기에 대해서 면담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중에 볼리비아 현지의 사목지와 사제들의 현황이 잠깐 나왔다.
한국은 본당이 사제들의 반에 못미치는 것이 현실이고,
볼리비아는 사제들이 본당의 반에 못미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행할 수 있는 사제들만 있어도,
이곳에서는 감지덕지인 셈이다.
하지만 젊은 사제들이 이 곳에 나오기에 선뜻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는 한다.
말과 문화가 너무나도 다른 이 곳에 나오려면 적잖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리라.
그러나 이는 근본 '마음'에 달린 문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그걸 찾아 나선다면,
그리고 그 마음 안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가득해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데에 동의한다면,
이 먼 곳 볼리비아를 지원하는 일도 그리 요원하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한국 교회에 늘 사제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정말 부족할까?
정말 그 많은 '부주임'들이란 직책과,
혈기 왕성한 신부들이 연차가 한참 지나도 '보좌'로 남아 있을만큼 절실할까?
아마도 한국 교회에 사제가 부족하다는 볼멘소리는,
'거룩한' 사제가 부족하다는 게 아닐런지...
적어도 한국 교회에는 어느 신자가 적어도 매주 한 번이라도 미사를 드리고 싶으면
무슨 수라도 낼 수 있지 않은가?
성소를 양성하는 올바른 길은,
더 이상 '사탕'이 아닌 것 같다.
한국 교회는 부유해졌고,
더이상 '귤'이나 '김' 때문에 사제가 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직 이건 유효하긴 하다, 신학교의 복지후생은 그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정도니까. 지난 휴가때 가서 바뀐 신학교의 욕조만 없는 5성급 호텔 수준의 생활환경에 적잖이 감탄을 한 적이 있다.)
환경은 잘 갖추어 졌으니,
이제 사제직의 본연의 직무를 잘 드러내고 충실해야 할 때이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비단 젊은 사제들에게 전부 선교지에 나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들 잘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기우'에서 한 번 더 하는 소리이다.
신자들은 '거룩한' 사제를 원한다.
거룩하다는 것이 늘 그레고리오 성가나 부르고 기도손을 하고 있다고 거룩해지지는 않는다.
거룩하다는 의미의 본질은,
'하느님과 가까이 머문다'는 것이다.
어느 사제이든지 자신이 머문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찾는다면,
대한민국의 성소는 마르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여력이 온 세계에 미치리라.
우리는 새로운 '선택된 민족'이 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물량으로 쏟아 부어서 하는 선교가 아니라,
진정 거룩한 사제,
영적인 보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제가 선교지와 모든 곳에서 절실하다.
기우(杞憂)다...
그야말로 옛말 그대로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하는 걱정에 불과하다.
헌데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그거 아는가?
언젠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릴 것이다.
베드로2서 3장 10절-12절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거룩하고 신심깊은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