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관계
친구1: 너랑 나랑은 베프(베스트 프렌드)셈.
친구2: 알았삼.
(2에게 어느날 다른 친구3이 생김. 1이 질투함.)
친구1: 너랑 나랑은 베프 아니삼.
친구2: 왜 그러삼?
친구1: 너는 친구3이랑 놀기 시작했음.
친구2: 그럼 안되는거삼?
친구1: 베프 끼리는 둘이만 놀아야 되는거삼.
친구2: 헐...
우리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그 우정의 관계는,
'집착'인 경우가 많다.
집착과 진실한 우정의 차이는,
상대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 나의 반응에 달려있다.
집착은 '소유'에 가까운 거라서,
그가 나의 뜻대로만 움직이기를 바라고,
진실한 우정은 예수님의 '참 사랑'에 가까운 거라서
그가 진정 행복해지길 바라는 거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피를 나눈 가족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가족이 더 중요한 법이다.
정말 친구라면, 그리고 나의 단점과 약점을 안다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그 친구가, 나보다 더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을
기꺼이 반기고, 그 더 좋은 친구의 장점을 통해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하지만 집착하는 친구는
내가 집착하는 대상에 온전히 몰두해서
그를 '부자연스러움'으로 이끈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보라.
나는 그를 자유롭게 날아가게 할 준비가 늘 되어 있는가?
아니면 그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가?
어렵지 않게 구분이 갈 것이다.
(단, 혼인관계는 예외다. 우정이라는 것과 혼인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한 몸의 관계이다. 아프다고 제 몸을 쉽사리 싹둑싹둑 잘라내는 사람은 없다. 최대한 보듬고 다듬어서 보완해 나간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에게 헌신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 관계는 어느정도의 폐쇄성을 요구한다. 내가 코딱지 파는 걸 남에게 보란듯이 하지는 않듯이 부부는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어주고 서로의 약점을 지켜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딴 생각 말고 자신의 배우자를 바라보고 지키고 사랑하라는 거다. 그 몸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밖으로 걸어다니면서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왼쪽 몸을 가누지를 못하면서 밖으로 나가서 몸이 성한 사람들을 도와 주겠노라고 나서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