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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우리가 밤 하늘에 눈을 들어 바라보는 우주는
짧게는 수십광년 멀게는 수십억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은하나 별들로부터 관찰되는 우주이다.
이 말인즉슨, 우리는 철저히 과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지금 실제로 그 우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좋은 우주선을 개발해서 거기까지 여행을 가서 그 우주의 현재를 보더라도,
그 신호를 지구로 쏘아 보내면,
우리는 수십억년이 지난 뒤에야 그 신호를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우리로서는 지금 관찰되는 별들이 바로 우리의 현재일 뿐이다.

우리가 사물들을 현재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자의식' 덕분이다.

생각을 바꾸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의식의 단편을 내어주지 않으면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경우와 부정적인 경우의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긍정적인 경우는,
내 주변의 어두운 일에 마음쓰지 않는 것이다.
이유도 없어 보이는 데 괜히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
다른 사람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뭐든 일을 크게 심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을
말 그대로 '쿨~'하게 무시하면 된다.
(근데 쉽지는 않다. 계속 주변에서 시끄럽게 해 댈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경우는,
내 주변의 절실한 일,
내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일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다.
어느 사제가 부유한 신자들 하고만 어울리면서 수준에 맞지도 않는 취미생활을 즐기러 다니고,
떡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신자들의 영적인 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어느 정치인이 지역 현안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신분상승과 권력의 확장에만 기를 쓰고 있는 경우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무턱대고 다 받아들이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내가 소홀히 하는 건 없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과연 '하느님', '구원', '부활' 등등을...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해버리고 살지는 않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신의 자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현재'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의 현재는 당신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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