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한 가족이 본당에 미사를 신청했다.
어느 망자의 9일째 되는 날,
집에서 하는 모임보다는 하느님의 제단 앞에 미사를 신청한 것이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왔다.
어제 복음은 "밭에 뭍힌 보물", 한 사람이 밭에 나갔다가
뭍혀있는 보물을 발견하고는 돌아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세상의 사물의 가치를 잘 압니다.
뭐가 더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구분해 냅니다.
하지만 영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는 기도하기보다는 텔레비전 보기를 선호하지요.
왜냐면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져 왔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눈앞에 두었을 때에 우리는 영적인 가치를 소홀히 합니다.
안타깝게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지지 못한 걸 내어줄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뭐든 손에 쥐고 있어야 그 쥔 걸 다른 사람에게 줄 수가 있지요.
예컨대 나를 꾸준히 괴롭히는 사랑을 하라는데,
그 사랑이 나에게 존재할 리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괴롭혀 그나마 존재하던 사랑도 고갈되어 가는데,
어찌 그 나쁜 사람을,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리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그 사랑의 샘을 하느님에게서 찾고,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있다는 것,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걸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의 샘은 마르지 않으며,
결국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상대를 다시 사랑해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현세에 머무는 사람은 '거래'를 합니다.
'네가 날 사랑하면 나도 널 사랑하마'
'내가 널 사랑했으니 너도 그 사랑을 돌려줘야지.'
'네가 행동을 바꾸면 그때서야 널 용서하겠다.'
이런 생각들은 현세적인 '거래'에서 비롯됩니다.
1000원을 주고 껌 한 통을 사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영적인 가치에 눈을 돌리십시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도에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하루에 주님의 기도 단 한 번이라도 바치십시오.
그것도 귀찮거든 아침에 일어나면서 성호라도 그으세요.
그 성호 한 번으로 온 하루가 다 밝혀질 테니까요.
하느님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잡아끄는데로 가지 마십시오.
세상이 원하는 건 뻔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더 많이 가지기'를 바라고 '더 높이 올라가기'를 원하고 '더 많은 권력을 지니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을 수 있거든요.
예수님은 '낮아져라'하셨습니다.
주인인 당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지요.
당신의 죽음을 앞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온 생애 중에 가장 소중한 가르침을 전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낮아지라'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낮아 지십시오."
사실 더 많은 말을 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자 한 아저씨가 제의방에까지 일부러 찾아와서는
"신부님 감사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강론 잘 새겨 들었습니다."라고 하신다.
한 사람 눈 수술 해 줬다. ㅎㅎㅎ
한국은 쌍수는 기본이라는데,
나에겐 영적인 눈 수술이 더 시급하다.
내 육적인 눈은 조그맣고 볼품 없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음의 눈이다.
그걸 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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