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관계가 고상하고 우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서로 이용하는 인간관계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마치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고 사는 것처럼 인간관계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택시를 탈 때에 그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를 이용하는 것이지 그와 고차원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행동이 ‘사제’와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제에게 다가가면서 사제를 고차원적인 관계 안에서 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제가 그 직분상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분상으로 이용되는 사제는 오히려 다행일지 모릅니다. 그마저도 아닌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즉 사제를 직분과 전혀 상관없이 이용하는 이들입니다.
사제를 노래방 도우미로 쓰고, 사제를 수다떠는 대상으로 쓰고, 사제를 남편이 걱정하지 않는 안전한 연인으로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제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채우고 나면 마치 씹다 버린 껌 버리듯이 버려버리기도 하지요.
참다운 우정을 모르는 이들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지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다른 이들과 아주 고차원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지요. 그저 그를 사용할 뿐이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훗날 얻게 될 참된 보물은 진정한 우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친구끼리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부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녀 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양자가 서로 소통하는 관계,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관계입니다.
단순히 찻집에 더 많은 시간을 모여 수다를 떤다고 해서 참된 우정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전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목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행동이 ‘사제’와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제에게 다가가면서 사제를 고차원적인 관계 안에서 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제가 그 직분상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분상으로 이용되는 사제는 오히려 다행일지 모릅니다. 그마저도 아닌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즉 사제를 직분과 전혀 상관없이 이용하는 이들입니다.
사제를 노래방 도우미로 쓰고, 사제를 수다떠는 대상으로 쓰고, 사제를 남편이 걱정하지 않는 안전한 연인으로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제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채우고 나면 마치 씹다 버린 껌 버리듯이 버려버리기도 하지요.
참다운 우정을 모르는 이들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지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다른 이들과 아주 고차원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지요. 그저 그를 사용할 뿐이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훗날 얻게 될 참된 보물은 진정한 우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친구끼리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부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녀 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양자가 서로 소통하는 관계,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관계입니다.
단순히 찻집에 더 많은 시간을 모여 수다를 떤다고 해서 참된 우정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전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목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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