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식’을 올바로 지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쉰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새로이 일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대로 쉬지 않습니다. 오히려 쉼을 핑계로 더 많은 육체노동, 정신노동을 하고 정작 일을 해야 할 때에는 일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식이 하느님이 본을 보이신 것이지만 반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도 하느님이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쉬기 이전에 충분히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동의 가치 역시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노동하려고 하고 최대한 이윤을 뽑으려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일하느라 망친 건강을 위해서 투자를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순환고리이지요.
유다인들의 안식일의 개념은 안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라는 이름의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갖 법규를 만들어두고 그것을 지키느라 더 골머리를 쓰고 있었지요. 더군다나 서로 감시의 눈초리를 하고는 행여 누가 무엇을 어기는지를 더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 자신도 쉬지 못하고 남들도 쉬지 못하고 있었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쉬게 도와주셨습니다. 밀밭 사이를 지나면서 굶주렸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어 비벼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지요. 배가 고픈 다윗 일행이 성전의 빵을 문제 없이 먹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일하는’ 바리사이들은 이 모습을 놓치지 않았고 그들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서 할 말이 없었지요.
쉬는 날은 쉬어야 됩니다. 엉뚱하게 술을 퍼마신다고 더 몸을 혹사시켜도 안되고, 최선을 다해 놀 계획을 짜느라 정신을 지치게 해도 안되며, 양심에 어두운 죄를 남겨놓은 채로 영을 지치게 해서도 안됩니다. 쉬는 날은 자고로 미사 참례하고, 행여 그릇된 게 있으면 성사도 보고, 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한끼 사먹고 집에 돌아가 아내 청소도 돕고 남은 시간 자녀들과 대화도 나누고 자기 전에 가족들이 함께 기도 바치고 자는 것이 참으로 좋은 안식이 아니겠습니까? 결혼을 안해봐서 제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겠지요.
안식이 하느님이 본을 보이신 것이지만 반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도 하느님이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쉬기 이전에 충분히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동의 가치 역시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노동하려고 하고 최대한 이윤을 뽑으려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일하느라 망친 건강을 위해서 투자를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순환고리이지요.
유다인들의 안식일의 개념은 안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라는 이름의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갖 법규를 만들어두고 그것을 지키느라 더 골머리를 쓰고 있었지요. 더군다나 서로 감시의 눈초리를 하고는 행여 누가 무엇을 어기는지를 더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 자신도 쉬지 못하고 남들도 쉬지 못하고 있었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쉬게 도와주셨습니다. 밀밭 사이를 지나면서 굶주렸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어 비벼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지요. 배가 고픈 다윗 일행이 성전의 빵을 문제 없이 먹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일하는’ 바리사이들은 이 모습을 놓치지 않았고 그들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서 할 말이 없었지요.
쉬는 날은 쉬어야 됩니다. 엉뚱하게 술을 퍼마신다고 더 몸을 혹사시켜도 안되고, 최선을 다해 놀 계획을 짜느라 정신을 지치게 해도 안되며, 양심에 어두운 죄를 남겨놓은 채로 영을 지치게 해서도 안됩니다. 쉬는 날은 자고로 미사 참례하고, 행여 그릇된 게 있으면 성사도 보고, 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한끼 사먹고 집에 돌아가 아내 청소도 돕고 남은 시간 자녀들과 대화도 나누고 자기 전에 가족들이 함께 기도 바치고 자는 것이 참으로 좋은 안식이 아니겠습니까? 결혼을 안해봐서 제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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