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이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가르침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 흐르듯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있는 가르침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고 믿어버리고 있다면 그에게는 더는 가르칠 것이 없고 그저 그 자신이 직접 부딪혀가면서 배울 수 있을 뿐입니다.
사제나 수녀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저마다 스승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배웠으니 더는 듣고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을 전하려고 해도 좀처럼 전해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즉, ‘겸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른들이 굽신거리고, 본당에 나오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예 어른 행세를 하니 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사제’라는 신적 직분 때문에 행여라도 하늘의 화를 입을까봐서 사람들은 그에게 쉽게 다가서지지도 못하고 뭔가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어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꿀꺽 삼켜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서 살기 일쑤이지요.
세상 그 어느 가정도 문제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 10명 중에 9명이 천사라도 1명이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고, 또 가족 외에서 다가오는 문제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헌데 한 본당의 그 수많은 구성원들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반드시 뭔가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큰 문제도 있게 마련입니다. 사제는 그런 상황에 늘 노출되어 사랑으로 보듬고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헌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측근들에게 둘러싸여만 있으면서 그들의 찬사를 받게 되면 현실을 직시하기는 커녕, 자신이 만든 이상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훗날에는 크게 부딪히는 경우가 많지요.
제가 서품성구를 ‘겸손과 기도’로 선택한 것은 바로 사제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즉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앞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겸손의 부족이 일어나고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겸손한 사제는 세상의 보물과도 같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직분을 통해서 그에게 쏟아줄 수 있는 모든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며 결국 그 구한 영혼들과 하늘 나라에서 기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원에 대한 갈망 없이 현세적인 욕구를 채우려고 하기 시작하면 안타깝게도 그는 양들의 털을 벗겨먹고 젖을 짜 먹으면서 양들을 돌보지도 않는 충실하지 못한 목자, 충실하지 못한 집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제나 수녀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저마다 스승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배웠으니 더는 듣고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을 전하려고 해도 좀처럼 전해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즉, ‘겸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
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른들이 굽신거리고, 본당에 나오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예 어른 행세를 하니 교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사제’라는 신적 직분 때문에 행여라도 하늘의 화를 입을까봐서 사람들은 그에게 쉽게 다가서지지도 못하고 뭔가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어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꿀꺽 삼켜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서 살기 일쑤이지요.
세상 그 어느 가정도 문제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 10명 중에 9명이 천사라도 1명이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고, 또 가족 외에서 다가오는 문제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헌데 한 본당의 그 수많은 구성원들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반드시 뭔가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큰 문제도 있게 마련입니다. 사제는 그런 상황에 늘 노출되어 사랑으로 보듬고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헌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측근들에게 둘러싸여만 있으면서 그들의 찬사를 받게 되면 현실을 직시하기는 커녕, 자신이 만든 이상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훗날에는 크게 부딪히는 경우가 많지요.
제가 서품성구를 ‘겸손과 기도’로 선택한 것은 바로 사제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즉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앞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겸손의 부족이 일어나고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겸손한 사제는 세상의 보물과도 같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직분을 통해서 그에게 쏟아줄 수 있는 모든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며 결국 그 구한 영혼들과 하늘 나라에서 기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원에 대한 갈망 없이 현세적인 욕구를 채우려고 하기 시작하면 안타깝게도 그는 양들의 털을 벗겨먹고 젖을 짜 먹으면서 양들을 돌보지도 않는 충실하지 못한 목자, 충실하지 못한 집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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