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첨병 사제 - 해외편‧마진우 요셉 신부
나는 귀한 손님 태우고 가는 당나귀입니다
2005년 사제수품. 대구대교구 범어, 고산본당 보좌를 거쳐 2008년 6월 남미 볼리비아로 파견되었다. Cristo Salvador(구원자 그리스도)본당에 이어, 2013년도부터 Nuestra SeñoraAparecida(우리들의 아빠레시다 성모님: 브라질의 주보 성인)본당을 맡아 사목하면서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에 거주하고 있다.
비행기 대기시간 제외, 편도 약 32시간. 그런데도 국내 많은 여행족이 이 나라 여행을 자신의 버킷리스트로 꼽는다. ‘지상에서 천국과 가장 닮은 곳’이라 불리는 우유니 소금 사막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또 한 사람, 마진우 신부 역시 8년 전 덜컥 이곳 해외선교 파견에 자원(!)했다. 그런데 여행족의 ‘그것’과는 이유가 달랐다. 그저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라 위치도 모른 채 신청한 것이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지만, 그는 그곳 볼리비아에서 사제 생활의 기본을 새로이 다져 준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제로서의 능력이 바닥부터 다시 다져지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본국이라면 언제나 신자들에 둘러싸여 기본적인 존경과 사랑을 바탕으로 사제 생활이 시작되고, 그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가겠지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선 ‘언어’와 ‘문화’라는 장벽 때문에 사제이지만 지극히 낮은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즉 이곳의 언어와 문화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전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하다못해 여섯 살짜리 아이한테서도요.
나아가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사제로서 제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한국에서 누리던 존경과 사랑이 절대로 나 자신의 인간적 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는 것, 다시 말해 예수님 덕분에 받았던 것임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닮고 또 사람들에게 그분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야 제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데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한데 만일 그 존경과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다면, 마치 귀한 손님을 태우고 가는 당나귀가 자신을 엄청나게 귀한 존재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그렇게 여긴다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일어나겠지요.”
사제직은 내 능력이 좋아서 따낸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님의 초대였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선물로 공짜로 받은 것일 뿐이라 말하는 마 신부. ‘가수 인생, 노래 따라간다’는 설이 있듯, ‘사제 인생, 서품 성구 따라간다’는 말도 들어맞는 것일까?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한 겸손’이 묻어나는 그의 서품 성구는 ‘겸손과 기도’다. 보통 예비 새 사제들이 자신의 성구를 성경말씀 가운데 한 구절을 꼽는 것에 비할 때, 조금 특이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신학교 시절 읽은 영성서적 대부분에서 ‘겸손’과 ‘기도’라는 두 가지 핵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성구로 정했어요. 성구라는 것이 평생을 두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특별히 나에게 부족한 점을 늘 상기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즉 겸손과 기도는 이미 제가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야말로 저에게 부족한 것이어서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 신부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어찌 보면 교만의 유혹에 쉽게 빠질 법도 한 화려한(?) 이력을 지녔다. 고2 때 성당 친구들과 댄스 그룹을 조직해 성탄 가요제에서 춤추고 노래할 만큼 끼가 넘쳤고, 서울 유능한 대학들에 수능 모의고사를 치면 거뜬히 붙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고1 때 어머니의 권유로 성소모임을 나가기 시작한 것이 자연스레 신학교 입학으로 이어졌지만, 그는 그 선택이 결국 자신의 의지였음을 분명히 한다. 하느님께서 그를 ‘세상 것’에 머무르도록 놔두시지 않고 ‘천상 것’을 갈망하도록 이끄신 까닭일까.
“청소년기에 여러 어른들을 보면서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또 고등학생 때는 우연한 계기로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보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참으로 설레었지만, 너무 어렸던 탓인지 시간이 갈수록 흥미가 줄더군요. 그런 체험들 속에서 신학교에 간다는 것, 곧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독신,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고 싶었습니다.”
첫 마음이 그러했듯 그는 여전히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낮춰 가는 중이다.
“이곳 볼리비아에 있으면서 진정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특히 사제가 진실로 행복한 때는 안락한 환경에 처한 때가 아니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이루어 나갈 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도, 한국 평균 수준에 비하면 참으로 가진 것 없이 살지만, 행복이란 외적 재화의 양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휴가를 나갔을 때 빵이 먹고 싶어서 어느 편의점에 들렀어요. 그런데 너무나 많은 종류의 빵을 눈앞에 두고 그중에서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고 놀랐습니다. 풍요로운 환경은 오히려 인간을 지극히 감각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평생 함께할 나머지 성구인 ‘기도’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제 방 책상 위에는 늘 성모님 액자와 예수님 십자고상이 놓여 있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그분들이 보이지요. 제게 기도란 다른 게 아니라 주님을 늘 기억하는 것이고 제가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마 신부는 일과 중 짬이 나면 책상에 앉아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거나 말씀을 묵상한다. 그리고 묵상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그의 SNS 활동은 보통의 신변잡기가 아니라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시간 기록인 셈. 문득 그런 그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선교 사목이라는 게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한국의 신부님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주일과 평일 미사를 드리고, 그 외 다른 성사들을 준비하고 거행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축복식이나 장례와 같은 준성사 행위를 거행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람들의 요구를 듣고 도와주고, 나아가 봉사자들을 조직하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신앙교육을 제공합니다. 다만 그것을 전혀 다른 언어와 환경 안에서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하지만 그런 일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결국은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선교사의 마음이 중요하고요.”
그리하여 그는 무엇보다 눈높이 강론에 힘쓴다. 영혼을 깨우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알기에.
“신학생으로 지내던 어느 날, 한 본당 어린이 미사에 참례했을 때입니다. 생기발랄한 초등학생 아이들을 앞에 앉혀 두고 따분한 신학 서적을 요약한 듯한 강론이 진행되는 걸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체험이 아마 지금의 제 모습을 형성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강론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이곳 현지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면 제가 가르치려는 내용을 그들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금세 알아들을 수 있게끔 항상 비유를 사용하곤 합니다. 제가 여기서 외적으로 특별히 뭔가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도, 내적으로 사람들에게 영적인 성전을 지어 놓았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선교 사목 활동을 하며 얻은 보람과 기쁨 또한 그를 거쳐 간 사람들의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다.
“죽으라 술을 마시던 한 가정의 아버지가 제가 하는 강론을 듣고 슬슬 정신을 차리고 가족에게 돌아갈 때, 다른 이성의 유혹에 시달리던 한 가정의 어머니가 제 강론을 듣고 뉘우치고 성사를 볼 때, 제 본당의 청소년들이 나쁜 길에 들어서 있다가 뉘우치고 하느님에게 돌아올 때…. 그러한 소소하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체험들이 저의 일상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곤 합니다. 지금 있는 본당에서 사목한 지가 이제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최근 들어서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조금씩 그 결과물이 보이고 있습니다.
굳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꼽으라 한다면…. 한번은 한 가난한 할아버지를 도운 일이 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다리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생겼는데 자식이 있어도 제대로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그냥 방치해서 상처가 썩어들어 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걸 알게 된 제가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꾸준히 찾아가 소독하고 붕대로 싸매고 해서 마침내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지요. 이분은 주일 미사에 오면 꼭 저와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나누셔야 속이 풀리십니다.”
현재 마 신부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은총을 이들과 함께 나누고, 나아가 이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때로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어 골치를 앓기도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이들에게도 새로운 날을 선물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기에” 자신은 끊임없이 보듬을 수밖에 없다 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일 뿐이기에 특별히 한국을 그리워해 본 적 없다는 그,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순간까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그분이 부르시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곁에 계신 하느님을 진하게 느꼈던 순간을 물었다.
“한번은 여권을 갱신하러 라파스(볼리비아의 행정 수도)에 혼자 간 적이 있습니다. 공항에서 값을 싸게 부르는 택시를 탔는데 저를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가는 거예요. 보조석에 한 명, 내 좌우로 두 명 해서 총 4인조 택시강도를 당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털렸지요. 그런데 현지인들의 말이, 그런 경우 가진 걸 모조리 빼앗고는 자신들의 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인 다음 산골짜기에 내다 버리는 게 보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저는 목숨을 보존했지요. 사제를 사랑하는 하느님을 절실히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지상에 사는 동안 목숨만 보존하면 무엇이든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영원한 생명만 간직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가 닥치더라도 얼마든지 평화 중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마진우 신부는 마지막 저 대답을 하기 전, 하나의 전제를 달았다.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계시며, 다만 우리가 그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 구미에 맞는 모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러기에 “늘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찾는가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작은 새의 노래에서,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얼굴에서,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운 선율과 순수함, 위대하심과 섭리를 읽어 내고자 노력한다는 그. 그의 고백이 새로운 것은 아니나 이내 곰곰 성찰케 했다. 우리는 온 우주를 배경으로 숨어 계신 하느님 찾기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을까. 지구 반대편, 겸손과 기도로 날마다 정진하는 한 사제가 보내온 뜨거운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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