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12,15)
필요와 탐욕은 전혀 다른 두 가지입니다. 배가 고픈 아이가 밥을 먹는 것을 두고 탐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탐욕은 배가 이미 부른 아이가 더 맛깔난 것을 원할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가 고플까요?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배가 부릅니다. 우리가 이미 누리는 수많은 것들을 아직 하나도 갖지 못한 이들이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헌데도 우리는 필요가 아닌 탐욕으로 수많은 것들을 더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이것은 탐욕이 아니라 필요라고 설득하는 것이지요.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균형감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최고의 사람들’을 기준으로 상정되어 있어서 언제나 무언가에 궁핍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대상은 절대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 정도는 해 줘야.’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나 합당한 기준일 거라고 착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것은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필요한 것을 지니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탐욕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탐욕에 사로잡혀 욕심을 부릴 때마다 우리의 수호천사는 슬퍼할 것이고 반면 어둠의 영은 기뻐 뛸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를 넘어서서 지니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누군가의 몫을 우리가 억지로 지니고 있는 셈이지요. 모든 탐욕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와 탐욕은 전혀 다른 두 가지입니다. 배가 고픈 아이가 밥을 먹는 것을 두고 탐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탐욕은 배가 이미 부른 아이가 더 맛깔난 것을 원할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가 고플까요?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배가 부릅니다. 우리가 이미 누리는 수많은 것들을 아직 하나도 갖지 못한 이들이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헌데도 우리는 필요가 아닌 탐욕으로 수많은 것들을 더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이것은 탐욕이 아니라 필요라고 설득하는 것이지요.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균형감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최고의 사람들’을 기준으로 상정되어 있어서 언제나 무언가에 궁핍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대상은 절대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 정도는 해 줘야.’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나 합당한 기준일 거라고 착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것은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필요한 것을 지니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탐욕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탐욕에 사로잡혀 욕심을 부릴 때마다 우리의 수호천사는 슬퍼할 것이고 반면 어둠의 영은 기뻐 뛸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를 넘어서서 지니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누군가의 몫을 우리가 억지로 지니고 있는 셈이지요. 모든 탐욕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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