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많은 이들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진정으로 영으로 가까이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친구일 것이고 그 진정한 사랑으로 주변을 돌보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친구를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망쳐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참된 친구는 서로를 소유해서 닫힌 관계로 머무는 게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진정으로 빌어주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모습입니다. 우린 뭐든 손에 쥐고 가질려고 하기 때문에, 바로 그 관계의 탐욕 때문에 인간관계마저 흐려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늘상 고급 커피숍에서 만나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정작 필요할 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그 관계를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지요. 참된 우정은 '올바름' 안에서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것도 때로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영혼이 온전히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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