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겉만 본 사람에게 사과는 알록달록한 색입니다. 빨갛거나 파랗거나 노랗거나 하지요. 하지만 속을 본 사람들, 또 속을 맛본 사람들에게 사과는 하얀 속살이 있는 새콤달콤한 과일입니다. 거기에 안에 씨도 있지요.
한 면만 보는 사람에게는 한 면만 보입니다. 여러가지를 함께 보는 사람이 비로소 올바른 시선을 갖추게 되지요.
여러면을 보게 된 사람은 한 면만 보는 사람의 시선이 좁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나아가서 자신보다 더 많은 면을 볼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지요. 그래서 자연 겸손해집니다.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전능과 위대성 안에서 인간은 자연스레 ‘겸손’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사람들에게, 특히나 한 면만 보고 있는 편협한 사람들에게는 ‘순진성’으로 내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협함에 사로잡혀 자신보다 시선이 넓은 이를 두고는 ‘편협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고 세상을 순진하게 살아간다고 착각하지요.
“신부님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신부님이 우리 사는 거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알고 있지요. 저는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반면 자신이 모르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 면만 보는 사람에게는 한 면만 보입니다. 여러가지를 함께 보는 사람이 비로소 올바른 시선을 갖추게 되지요.
여러면을 보게 된 사람은 한 면만 보는 사람의 시선이 좁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나아가서 자신보다 더 많은 면을 볼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지요. 그래서 자연 겸손해집니다.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전능과 위대성 안에서 인간은 자연스레 ‘겸손’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사람들에게, 특히나 한 면만 보고 있는 편협한 사람들에게는 ‘순진성’으로 내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협함에 사로잡혀 자신보다 시선이 넓은 이를 두고는 ‘편협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고 세상을 순진하게 살아간다고 착각하지요.
“신부님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신부님이 우리 사는 거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알고 있지요. 저는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반면 자신이 모르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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