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진정한 어리석음은 계산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철저히 계산하고 살아갑니다. 저 역시 계산하는 머리가 죽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재고 시간을 관리하지요.
어리석음의 영적인 의미는 ‘하느님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에 대해서 모를 때에 어리석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무지’라고 표현된 것은 그분의 선과 사랑과 정의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과 사랑과 정의는 인간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선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정말 하느님을 닮아서 선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하느님을 닮아서 선해지려면 적지 않은 자기 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의 선을 닮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 교회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믿음’ 안에서 사는 이들은 이 과업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진정한 선에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사랑과 정의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마다 영광을 주고받습니다. “아이고, 우째 이리 좋은 일을 하셨어요.”라고 일상적으로 표현할 때에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것들입니다. 실제로는 전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일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추켜 세우고, 또 그런 서로의 영광을 즐기지요. 그냥 빈말로 하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의 어리석음은 하느님을 알기 시작하면서 깨어지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어떠한 어리석음의 상태에 있었는지를 깨달으면서 서서히 거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헛된 영광이 얼마나 천박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진정으로 뉘우치게 되지요. 심지어는 부끄러움을 느끼기조차 합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잘했다’ 할 수 있는 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리석음의 영적인 의미는 ‘하느님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에 대해서 모를 때에 어리석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무지’라고 표현된 것은 그분의 선과 사랑과 정의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과 사랑과 정의는 인간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선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정말 하느님을 닮아서 선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하느님을 닮아서 선해지려면 적지 않은 자기 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의 선을 닮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 교회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믿음’ 안에서 사는 이들은 이 과업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진정한 선에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사랑과 정의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마다 영광을 주고받습니다. “아이고, 우째 이리 좋은 일을 하셨어요.”라고 일상적으로 표현할 때에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것들입니다. 실제로는 전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일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추켜 세우고, 또 그런 서로의 영광을 즐기지요. 그냥 빈말로 하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의 어리석음은 하느님을 알기 시작하면서 깨어지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어떠한 어리석음의 상태에 있었는지를 깨달으면서 서서히 거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헛된 영광이 얼마나 천박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진정으로 뉘우치게 되지요. 심지어는 부끄러움을 느끼기조차 합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잘했다’ 할 수 있는 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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