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눈에는 개에게 필요한 것이 보입니다. 개가 신상 핸드백을 원하거나 고급 자동차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그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역시도 자신의 수준에 따라서 필요한 것을 찾게 됩니다. 인간이 세상 사물을 원하느냐 보다 상위의 것을 원하느냐 하는 것은 그 인간의 내면에 있는 영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기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아닙니다. 영혼은 육체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다음 작업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를 바라지요. 물론 사람인지라 잘 입기도 해야 합니다. 몸이 따뜻하게 유지될 정도로 말이지요. 그렇게 몸이 안정되고 나면 그 뒤로부터는 영혼이 본격적으로 원하는 것에 착수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먹고 자고 싸고 입고 하는 것에 자꾸만 얽매이는 영혼이 존재합니다. 바로 영혼 안에 ‘탐욕’이 깃든 영혼들입니다. 이 영혼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더 잘 먹고자 하고, 더 좋은 집에서 자려고 하고, 더 잘 입고자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진보해야 할 시기에 다시 한바퀴를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사못이 한바퀴를 돌아 더 깊게 박혀 버리듯이 영혼이 세상 안으로 더 깊이 박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탐욕이 생겨납니다. 이미 옷이 2벌이나 있는데 3벌을 원하기 시작합니다. 차가 있는데도 더 좋은 차를 원하고, 집도 더 큰 집을 원하지요. 그렇게 나사못은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더 깊이 박혀 버리는 것입니다.
탐욕의 수렁에 자꾸만 빠져들어가기 시작하는 만큼 영혼의 진보는 없게 됩니다. 이 영혼은 사랑하고 이웃과 나누고 기뻐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자신의 육적 안녕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서 허비하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그의 영혼의 어두움은 더욱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뻔합니다. 모든 영혼이 추수되는 그날 이 나사못도 뽑혀 버리게 되지요. 자신이 단단하게 안착하고 있었다고 믿었던 의지처가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은 단 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못한 채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텅텅 비어있는 자신의 두 손과 더불어 말이지요. 과연 그 영혼이 하느님 앞에 어떤 변명을 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세상에 눌러 붙어 있던 껌과 같은 존재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분을 볼 수나 있을까요?
영혼이 기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아닙니다. 영혼은 육체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다음 작업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를 바라지요. 물론 사람인지라 잘 입기도 해야 합니다. 몸이 따뜻하게 유지될 정도로 말이지요. 그렇게 몸이 안정되고 나면 그 뒤로부터는 영혼이 본격적으로 원하는 것에 착수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먹고 자고 싸고 입고 하는 것에 자꾸만 얽매이는 영혼이 존재합니다. 바로 영혼 안에 ‘탐욕’이 깃든 영혼들입니다. 이 영혼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더 잘 먹고자 하고, 더 좋은 집에서 자려고 하고, 더 잘 입고자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진보해야 할 시기에 다시 한바퀴를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사못이 한바퀴를 돌아 더 깊게 박혀 버리듯이 영혼이 세상 안으로 더 깊이 박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탐욕이 생겨납니다. 이미 옷이 2벌이나 있는데 3벌을 원하기 시작합니다. 차가 있는데도 더 좋은 차를 원하고, 집도 더 큰 집을 원하지요. 그렇게 나사못은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더 깊이 박혀 버리는 것입니다.
탐욕의 수렁에 자꾸만 빠져들어가기 시작하는 만큼 영혼의 진보는 없게 됩니다. 이 영혼은 사랑하고 이웃과 나누고 기뻐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자신의 육적 안녕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서 허비하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그의 영혼의 어두움은 더욱 깊어만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뻔합니다. 모든 영혼이 추수되는 그날 이 나사못도 뽑혀 버리게 되지요. 자신이 단단하게 안착하고 있었다고 믿었던 의지처가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은 단 한 발자국도 진보하지 못한 채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텅텅 비어있는 자신의 두 손과 더불어 말이지요. 과연 그 영혼이 하느님 앞에 어떤 변명을 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세상에 눌러 붙어 있던 껌과 같은 존재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분을 볼 수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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