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요한 2,25)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숨은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때면 속에 든 이야기를 곧바로 꺼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담배냄새가 나도 그것을 꾹 참고 웃으며 상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일 생각하는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꺼냈다가는 아마 세상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속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는 ‘완충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음모’를 꾸밀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상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악한 의도를 숨기고 상대에게 다가가서 방심하게 한 뒤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낚아채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약함을 알고 있었고 유다의 음모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친 것입니다.
이번 성전 정화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면으로 일어나는 생각들이 어떤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이 성전의 화려함에 반해가고 엄청난 사람들과 돈 사이에 있으면서 정신을 팔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일순간 돌변하여 전에 없던 그런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즉, 주변의 상인들을 쫓아내신 것이지요. 제자들의 내면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전에 대한 의미를 ‘예언’으로 가르치지요. 물론 당시에는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전이라 함은 오직 건물로 된 성전만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예수님은 수난 당하고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성전 정화 사건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성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내적 외적 성전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전, 즉 아버지의 집에서는 장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넓은 의미의 교회의 구성원을 보아서도, 나 개인의 내면의 영혼을 보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당에 장사하러 오지 않으며, 우리는 영혼을 돈의 노예가 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애써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내면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숨은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때면 속에 든 이야기를 곧바로 꺼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담배냄새가 나도 그것을 꾹 참고 웃으며 상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일 생각하는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꺼냈다가는 아마 세상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속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는 ‘완충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음모’를 꾸밀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상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악한 의도를 숨기고 상대에게 다가가서 방심하게 한 뒤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낚아채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약함을 알고 있었고 유다의 음모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친 것입니다.
이번 성전 정화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면으로 일어나는 생각들이 어떤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이 성전의 화려함에 반해가고 엄청난 사람들과 돈 사이에 있으면서 정신을 팔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일순간 돌변하여 전에 없던 그런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즉, 주변의 상인들을 쫓아내신 것이지요. 제자들의 내면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전에 대한 의미를 ‘예언’으로 가르치지요. 물론 당시에는 아무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전이라 함은 오직 건물로 된 성전만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예수님은 수난 당하고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성전 정화 사건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성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내적 외적 성전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전, 즉 아버지의 집에서는 장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넓은 의미의 교회의 구성원을 보아서도, 나 개인의 내면의 영혼을 보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당에 장사하러 오지 않으며, 우리는 영혼을 돈의 노예가 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애써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내면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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