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마태 20,22)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알면 함부로 청할 수 없습니다.
사제가 되는 사람이 자신의 직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올바로 알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제의 본질적인 직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던 어느 성인은 주교가 사제품을 주겠다고 나섰을 때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를 청하고 그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청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것을 수락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도 수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합당한 일들을 맡기기 시작하십니다. 이제 갓 회사에 들어온 인턴이 부장이나 맡을 만한 프로젝트를 맡아 하겠다고 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일을 맡기면 힘들다고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일개 사원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 직분의 ‘책무’가 아닙니다. 일개 사원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 직분의 ‘권위’입니다.
우리는 알고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보좌 신부 시절에 주임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막상 주임이 되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주임은 제멋대로인 사람일 뿐입니다. 책임감 있는 주임사제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올바르게 사목하는 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들을 올바르게 사목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나라를 선물하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이 초장부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하늘 나라를 누리려면 적절한 수양이 필요한데 하늘나라 수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신자들은 다가오는 시련에 힘들다고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나오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하느님에게 대놓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청했으니 하느님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은 한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좋은 것을 주었을 때에 그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그 좋은 것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 좋은 것을 누릴 준비까지도 갖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 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영어가 단숨에 자기 입에서 쏟아져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영어를 잘 하는 영광만 청하려 하지 그 영광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청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인내로이 영어를 가르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누가 선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당할 때는 알지 못합니다. 다들 지나고 나서 하느님의 지혜로움을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알면 함부로 청할 수 없습니다.
사제가 되는 사람이 자신의 직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올바로 알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제의 본질적인 직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던 어느 성인은 주교가 사제품을 주겠다고 나섰을 때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를 청하고 그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청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것을 수락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도 수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합당한 일들을 맡기기 시작하십니다. 이제 갓 회사에 들어온 인턴이 부장이나 맡을 만한 프로젝트를 맡아 하겠다고 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일을 맡기면 힘들다고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일개 사원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 직분의 ‘책무’가 아닙니다. 일개 사원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 직분의 ‘권위’입니다.
우리는 알고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보좌 신부 시절에 주임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막상 주임이 되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주임은 제멋대로인 사람일 뿐입니다. 책임감 있는 주임사제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올바르게 사목하는 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들을 올바르게 사목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나라를 선물하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이 초장부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하늘 나라를 누리려면 적절한 수양이 필요한데 하늘나라 수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신자들은 다가오는 시련에 힘들다고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나오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하느님에게 대놓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청했으니 하느님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은 한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좋은 것을 주었을 때에 그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그 좋은 것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 좋은 것을 누릴 준비까지도 갖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 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영어가 단숨에 자기 입에서 쏟아져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영어를 잘 하는 영광만 청하려 하지 그 영광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청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인내로이 영어를 가르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누가 선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당할 때는 알지 못합니다. 다들 지나고 나서 하느님의 지혜로움을 찬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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