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 18,35)
용서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면 말과 행동은 저절로 바뀌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말과 행동으로 짐짓 선한척 행동할 수 있지만 우리의 근본이 악하면 결국 악한 말과 행동이 다시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용수철을 눌러두면 잠시 형태만 바뀔 뿐 언제라도 다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용서가 실패하는 부분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우리는 ‘용서’에 대해서 배워 알 수 있습니다. 학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나의 ‘원의’로 바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담배에 중독된 사람은 담배에 해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끊을 수 없는 것은 여전합니다. 행여 전에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더욱 많이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증오’하는 데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랑’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증오하는 것이 좋아서 증오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부터 헤어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증오합니다.
사랑은 힘든 작업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사랑’에 대해서 대중가요 수준의 연인들의 불장난을 떠올리기에 사랑은 쉬운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천만에요. 사랑은 쉬운 게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고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기보다는 ‘증오’라는 더 쉬운 수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증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증오 그 자체의 위험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나아가 사랑의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지금 내가 쏟아놓는 것을 고스란히 다시 받게 된다는 올바른 깨달음만 있어도 됩니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향해 쏟아놓는 것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는 상상을 해 볼 여유만 있다면, 정말 그것을 올바르게 묵상할 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 안에서 나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그를 증오하십니까? 그 증오가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그에게 냉대하십니까? 그 냉대가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그를 용서하려고 노력하십니까? 그 용서가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십니까? 그 사랑이 돌아올 것입니다.
용서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면 말과 행동은 저절로 바뀌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말과 행동으로 짐짓 선한척 행동할 수 있지만 우리의 근본이 악하면 결국 악한 말과 행동이 다시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용수철을 눌러두면 잠시 형태만 바뀔 뿐 언제라도 다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용서가 실패하는 부분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우리는 ‘용서’에 대해서 배워 알 수 있습니다. 학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나의 ‘원의’로 바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담배에 중독된 사람은 담배에 해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끊을 수 없는 것은 여전합니다. 행여 전에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더욱 많이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증오’하는 데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랑’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증오하는 것이 좋아서 증오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부터 헤어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증오합니다.
사랑은 힘든 작업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사랑’에 대해서 대중가요 수준의 연인들의 불장난을 떠올리기에 사랑은 쉬운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천만에요. 사랑은 쉬운 게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고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기보다는 ‘증오’라는 더 쉬운 수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증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증오 그 자체의 위험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나아가 사랑의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지금 내가 쏟아놓는 것을 고스란히 다시 받게 된다는 올바른 깨달음만 있어도 됩니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향해 쏟아놓는 것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는 상상을 해 볼 여유만 있다면, 정말 그것을 올바르게 묵상할 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 안에서 나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그를 증오하십니까? 그 증오가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그에게 냉대하십니까? 그 냉대가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그를 용서하려고 노력하십니까? 그 용서가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십니까? 그 사랑이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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