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 7,30)
‘그분의 때’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는 적절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이 그러하니 열매는 추수의 때가 오지 않으면 추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적절한 ‘시기’가 있어서 그 시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때를 채우지 못하는 셈입니다.
아기는 때가 차지 않으면 뛸 수 없습니다. 아기는 무수한 시련의 시기를 통해서 자신의 다리를 조금씩 단련시켜야 하며 결국 일어나 걷게 되고, 나아가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장의 과정은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때를 무시하고 영광스러운 열매만을 탐낸다고 해서 그가 그것을 결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가 얻는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새로운 신발을 사는 때는 그가 적어도 옷에 흙을 묻히지 않을 수 있을 때이어야 합니다. 흙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이에게 새로운 신발을 선물한다고 해서 그가 그 신발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제 수준에서 그 신발을 대할 뿐입니다.
이제 겨우 바이엘을 치는 아이에게 거장의 피아노 악보를 선물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그 선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갈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스스로 그런 은총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시련’은 준비된 이들의 특권입니다. 내가 야기하는 죄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나에게 아무런 죄도 탓도 없는데 나에게 다가오는 시련들은 하느님의 사랑의 표지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이런 시련과 고통을 앞에 두고 하느님을 원망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를 매번 시험해 보십니다. 과연 우리가 다음의 시련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십니다. 마치 찜통 안에 넣어둔 감자를 젓가락으로 찔러 보듯이 우리도 당신의 ‘시련’이라는 젓가락으로 찔러 보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젓가락이 감자에 부드럽게 들어가면 먹어도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감자가 젓가락에 저항을 하면 아직도 더 삶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방법을 하느님이 우리를 향해 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때를 준비하시지요.
때가 이르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에게 주님의 수난은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셨기에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나쁜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투덜대지 마십시오.
‘그분의 때’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는 적절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이 그러하니 열매는 추수의 때가 오지 않으면 추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적절한 ‘시기’가 있어서 그 시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때를 채우지 못하는 셈입니다.
아기는 때가 차지 않으면 뛸 수 없습니다. 아기는 무수한 시련의 시기를 통해서 자신의 다리를 조금씩 단련시켜야 하며 결국 일어나 걷게 되고, 나아가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장의 과정은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때를 무시하고 영광스러운 열매만을 탐낸다고 해서 그가 그것을 결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가 얻는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새로운 신발을 사는 때는 그가 적어도 옷에 흙을 묻히지 않을 수 있을 때이어야 합니다. 흙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이에게 새로운 신발을 선물한다고 해서 그가 그 신발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제 수준에서 그 신발을 대할 뿐입니다.
이제 겨우 바이엘을 치는 아이에게 거장의 피아노 악보를 선물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그 선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갈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스스로 그런 은총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시련’은 준비된 이들의 특권입니다. 내가 야기하는 죄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나에게 아무런 죄도 탓도 없는데 나에게 다가오는 시련들은 하느님의 사랑의 표지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신앙인들은 이런 시련과 고통을 앞에 두고 하느님을 원망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를 매번 시험해 보십니다. 과연 우리가 다음의 시련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십니다. 마치 찜통 안에 넣어둔 감자를 젓가락으로 찔러 보듯이 우리도 당신의 ‘시련’이라는 젓가락으로 찔러 보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젓가락이 감자에 부드럽게 들어가면 먹어도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감자가 젓가락에 저항을 하면 아직도 더 삶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방법을 하느님이 우리를 향해 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때를 준비하시지요.
때가 이르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에게 주님의 수난은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셨기에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나쁜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투덜대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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