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요한 7,49)
이 말은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가르치는 참된 진리의 길을 모르는 이들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자들입니다. 헌데 역설적이고도 재밌는 사실은 이 말을 진정 그것을 모르는 이들이 내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말하고 행한 것으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꺼내는 모든 말과 행동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서 우리를 심판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웃을 함부로 다루면 결국 우리 자신도 함부로 다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심판하면 우리도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웃을 보듬고 이해하고 사랑하면 그 역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모르는 이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실 이 말을 하느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저주가 머지 않아 그들 자신에게 쏟아져 내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율법을 모르는 자들에게 당신의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당신 아들을 보내시는 사랑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만일 바리사이들이 정말 군중들이 율법을 모른다고 생각했더라면 그 율법을 알고 있는 자신들이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모른다고 저주를 쏟아 부었고 결국 그 저주는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율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율법은 ‘행동지침’이 아니라 ‘근본 방향’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율법’이라는 이름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실제적으로 강조한 율법은 자기들 멋대로 해석된 행동지침에 불과했습니다. 참된 율법은 ‘사랑’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율법을 모르는 이들은 그들 자신들입니다. 잘 배우고 학식이 뛰어난 그들 자신이 바로 율법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가르치는 참된 진리의 길을 모르는 이들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자들입니다. 헌데 역설적이고도 재밌는 사실은 이 말을 진정 그것을 모르는 이들이 내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말하고 행한 것으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꺼내는 모든 말과 행동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서 우리를 심판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웃을 함부로 다루면 결국 우리 자신도 함부로 다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심판하면 우리도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웃을 보듬고 이해하고 사랑하면 그 역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모르는 이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실 이 말을 하느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저주가 머지 않아 그들 자신에게 쏟아져 내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율법을 모르는 자들에게 당신의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당신 아들을 보내시는 사랑을 행하신 분이십니다. 만일 바리사이들이 정말 군중들이 율법을 모른다고 생각했더라면 그 율법을 알고 있는 자신들이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모른다고 저주를 쏟아 부었고 결국 그 저주는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율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율법은 ‘행동지침’이 아니라 ‘근본 방향’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율법’이라는 이름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실제적으로 강조한 율법은 자기들 멋대로 해석된 행동지침에 불과했습니다. 참된 율법은 ‘사랑’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율법을 모르는 이들은 그들 자신들입니다. 잘 배우고 학식이 뛰어난 그들 자신이 바로 율법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