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1코린 1,25)
바오로 사도는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에 유다인에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훌륭한 청년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그러한 것들을 ‘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엄청난 방향전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바오로 사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내세우게 됩니다. 더군다나 ‘찌르는 병’까지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남보다 나아지고자 투쟁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 나아짐의 기준은 모두가 아는 바 그대로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올라서면 남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세상 안에서 더 어리석고 더 약해 보이는 것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아마 하느님이 가르치는 대로 살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은 일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우리 조상들 중에는 그런 신앙선조들이 많았습니다. 신앙 때문에 청기와를 얹은 한옥집에 살다가 산속으로 들어가 천민처럼 옹기를 만들고 지낸 이들이 있었습니다. 팔공산의 한티 순교 성지에 가면 우리 신앙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어리석음과 약함의 상징 그 자체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것은 불의를 감싸 안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불의에 맞서는 방식이었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도망쳐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지금 우리는 아주 좋은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다고 위협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생계에 위협이 된다면 언제라도 내던질 수 있는 시대에 살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열심히 교리교사로 봉사를 하다가 냉담을 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세상 안에서 어리석음과 약함으로 보입니다. 하늘나라는 힘있는 자들이 탈취해 가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힘의 의미를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근육에 기력이 빠지는 날 그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짜 힘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말이지요.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에 유다인에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훌륭한 청년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그러한 것들을 ‘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엄청난 방향전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바오로 사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내세우게 됩니다. 더군다나 ‘찌르는 병’까지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남보다 나아지고자 투쟁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 나아짐의 기준은 모두가 아는 바 그대로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올라서면 남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반대의 길을 제시합니다. 세상 안에서 더 어리석고 더 약해 보이는 것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아마 하느님이 가르치는 대로 살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은 일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우리 조상들 중에는 그런 신앙선조들이 많았습니다. 신앙 때문에 청기와를 얹은 한옥집에 살다가 산속으로 들어가 천민처럼 옹기를 만들고 지낸 이들이 있었습니다. 팔공산의 한티 순교 성지에 가면 우리 신앙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어리석음과 약함의 상징 그 자체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것은 불의를 감싸 안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불의에 맞서는 방식이었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도망쳐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지금 우리는 아주 좋은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다고 위협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생계에 위협이 된다면 언제라도 내던질 수 있는 시대에 살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열심히 교리교사로 봉사를 하다가 냉담을 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세상 안에서 어리석음과 약함으로 보입니다. 하늘나라는 힘있는 자들이 탈취해 가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힘의 의미를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근육에 기력이 빠지는 날 그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짜 힘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말이지요.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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