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루는 것’을 좋아합니다. 뭔가 눈에 드러나고 쌓아둘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잔뜩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입니다. 아무리 큰 성전을 지어도 결국에는 부식되고 맙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다음에 비길 수 있습니다. ‘빈 장갑’이 되는 것입니다. 뭔가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가득 채운 장갑, 또는 겉치장이 화려한 장갑이 아니라 그 장갑 안에 손을 넣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장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갑 안에 손을 넣으실 분은 하느님이 되는 것이지요.
신앙인은 뭔가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의 신앙인은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가운데에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히브 10,7)
이를 위해서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있는 이기적인욕구를 없애는 것입니다. 나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나 자신에게 들러붙게 만드는 욕구를 비워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욕구들은 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길을 마련 하십니다. 우리의 욕구가 하나씩 정복될 수 있도록 우리 앞에 적절한 시련을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들을 다듬으십니다.
허영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치스러운 일을 허락하시고, 탐욕을 극복하도록 돈을 잃어보게 하십니다. 남을 짓밟는 욕구를 되살펴보라고 누군가에게 짓밟히게도 하십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배울 거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지를 못하고 오히려 우리의 내면에 반발심을 더해갑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 안에 있음에도 우리는 내어맡기지 못하고 끝까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둠의 요소들을 부여잡고 있으려고 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허락하는 동안 계속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저항하는 만큼 더욱 강도를 더해갑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우리가 내어맡기면 끝나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저항하기를 그만두면 정반대의 것이 주어질 것입니다.
칼이라는 도구는 그것을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어른은 그 아이에게 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언젠가 자라서 칼을 올바른 도구로 쓸 수 있을 때에 그에게는 칼이 주어집니다. 마찬가지의 일이 우리의 신앙 안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잔뜩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입니다. 아무리 큰 성전을 지어도 결국에는 부식되고 맙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다음에 비길 수 있습니다. ‘빈 장갑’이 되는 것입니다. 뭔가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가득 채운 장갑, 또는 겉치장이 화려한 장갑이 아니라 그 장갑 안에 손을 넣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장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갑 안에 손을 넣으실 분은 하느님이 되는 것이지요.
신앙인은 뭔가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의 신앙인은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가운데에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히브 10,7)
이를 위해서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있는 이기적인욕구를 없애는 것입니다. 나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나 자신에게 들러붙게 만드는 욕구를 비워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욕구들은 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길을 마련 하십니다. 우리의 욕구가 하나씩 정복될 수 있도록 우리 앞에 적절한 시련을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들을 다듬으십니다.
허영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치스러운 일을 허락하시고, 탐욕을 극복하도록 돈을 잃어보게 하십니다. 남을 짓밟는 욕구를 되살펴보라고 누군가에게 짓밟히게도 하십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배울 거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지를 못하고 오히려 우리의 내면에 반발심을 더해갑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 안에 있음에도 우리는 내어맡기지 못하고 끝까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둠의 요소들을 부여잡고 있으려고 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허락하는 동안 계속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저항하는 만큼 더욱 강도를 더해갑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우리가 내어맡기면 끝나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저항하기를 그만두면 정반대의 것이 주어질 것입니다.
칼이라는 도구는 그것을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어른은 그 아이에게 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언젠가 자라서 칼을 올바른 도구로 쓸 수 있을 때에 그에게는 칼이 주어집니다. 마찬가지의 일이 우리의 신앙 안에서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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