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사제들의 생일보다는 축일을 축하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근본 의미는 축일의 성인을 본따 거룩한 사제가 되라는 것이겠지요. 물론 사제 만이 아니라 다른 신자분들도 축일을 축하해 주는 것이 한국 가톨릭 안의 관례입니다. 하지만 유독 사제들은 생일보다는 축일을 챙겨주지요.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축일을 축하하는 의미는 축일의 이름의 원 주인인 성인의 거룩함이 그 세례명의 당사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가령 저는 ‘요셉’ 성인이 제 세례명의 주인공이니 저는 요셉 성인처럼 어떤 역격 안에서도 공동체를 향한 책임을 지고, 나아가 사랑 가득한 의로움을 지닌 사제가 되어야 비로소 그 이름에 합당한 존재가 되겠지요. 물론 부족함은 늘 있을테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축일은 그 성인의 거룩함을 통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그 성인 마저도 하느님이 은총을 부어 주시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서 있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축일의 원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축일을 계기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제의 필요를 챙기는 것은 아름다운 관행입니다. 하지만 마치 사제 본인이 그 축일에 신자들로부터 마땅히 무언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제는 그 날에 신자들로부터 무언가를 은근히 바라고 신자들은 사제와의 개인적인 친분에 따라서 그 날이 다가오면 부담을 느끼는 날로 변해버렸지요.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모든 축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축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찬미 받아야 하며 우리는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종들일 뿐입니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채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세금에 불과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축일을 축하하는 의미는 축일의 이름의 원 주인인 성인의 거룩함이 그 세례명의 당사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가령 저는 ‘요셉’ 성인이 제 세례명의 주인공이니 저는 요셉 성인처럼 어떤 역격 안에서도 공동체를 향한 책임을 지고, 나아가 사랑 가득한 의로움을 지닌 사제가 되어야 비로소 그 이름에 합당한 존재가 되겠지요. 물론 부족함은 늘 있을테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축일은 그 성인의 거룩함을 통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그 성인 마저도 하느님이 은총을 부어 주시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서 있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축일의 원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축일을 계기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제의 필요를 챙기는 것은 아름다운 관행입니다. 하지만 마치 사제 본인이 그 축일에 신자들로부터 마땅히 무언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제는 그 날에 신자들로부터 무언가를 은근히 바라고 신자들은 사제와의 개인적인 친분에 따라서 그 날이 다가오면 부담을 느끼는 날로 변해버렸지요.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모든 축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축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찬미 받아야 하며 우리는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종들일 뿐입니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채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세금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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