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벌악이라는 가톨릭의 4대 교리는 간단히 말하면 선한 이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이에게는 벌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인즉은 상선벌악이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반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상악벌선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악한 이에게는 기회를, 선한 이에게는 단련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이 악한 자의 그릇된 이득을 순식간에 빼앗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기 스스로 내려놓게 함으로써 선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나쁜 이들의 죄를 그때마다 벌해 버린다면 이 세상은 악인들이 깨끗이 사라지겠지만, 그때에 과연 선한 이들이 몇이나 남을 수 있을까요? 아마 단 한 명도 없을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오류와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더욱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편, 선한 이들은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받을 기쁨의 양을 더욱 늘려주기 위해서이지요. 사랑하는 제자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어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싶은 것이 선한 스승의 마음입니다. 선을 수용하는 마음의 넓이를 넓히는 아주 좋은 방법은 바로 ‘시련과 역경’입니다. 그래서 선한 이들은 외적으로는 갈수록 더욱 큰 고난에 맞닥뜨리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이처럼 선하신 분이십니다. 악인에게 기회를 주시고 선인을 가르치시지요. 하지만 이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특히나 자신이 어떠한 고난 중에 있을 때에는 더욱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고난을 거치고 났을 때에 일어나는 결과에 따라서 가로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십자가가 다가올 때에 껴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세상에 젖어 있는 이라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얼른 길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악한 이에게는 기회를, 선한 이에게는 단련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이 악한 자의 그릇된 이득을 순식간에 빼앗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기 스스로 내려놓게 함으로써 선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나쁜 이들의 죄를 그때마다 벌해 버린다면 이 세상은 악인들이 깨끗이 사라지겠지만, 그때에 과연 선한 이들이 몇이나 남을 수 있을까요? 아마 단 한 명도 없을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오류와 실수가 있게 마련이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더욱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편, 선한 이들은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받을 기쁨의 양을 더욱 늘려주기 위해서이지요. 사랑하는 제자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어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싶은 것이 선한 스승의 마음입니다. 선을 수용하는 마음의 넓이를 넓히는 아주 좋은 방법은 바로 ‘시련과 역경’입니다. 그래서 선한 이들은 외적으로는 갈수록 더욱 큰 고난에 맞닥뜨리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이처럼 선하신 분이십니다. 악인에게 기회를 주시고 선인을 가르치시지요. 하지만 이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특히나 자신이 어떠한 고난 중에 있을 때에는 더욱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고난을 거치고 났을 때에 일어나는 결과에 따라서 가로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십자가가 다가올 때에 껴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세상에 젖어 있는 이라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얼른 길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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