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의 기자는 저를 빈 신문의 한 구석을 채워줄 ‘만화가’로 찾습니다. 옛 보좌를 하던 성당의 교사들은 저를 ‘추억의 인물’로 찾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둘째아들’로 찾고, 교구청에선 저를 ‘교구 사제’로 찾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누군가의 ‘아들’입니다.
저마다 추구하는 대로 저의 일부분을 찾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저를 ‘마진우’ 그대로의 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추구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물론 내어주어야 얻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저는 자신을 내어바쳐 하느님은 저를 얻을 것이고, 반대로 저는 하느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을 찾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과연 어떤 모습으로 찾았던가 하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받았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에게서 단순하 지혜의 말을 찾아 얻었고, 누군가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었습니다. 찾는 만큼 얻지만, 헌신하지 못하면 찾지 못합니다.
저마다 추구하는 대로 저의 일부분을 찾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저를 ‘마진우’ 그대로의 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추구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물론 내어주어야 얻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저는 자신을 내어바쳐 하느님은 저를 얻을 것이고, 반대로 저는 하느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을 찾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과연 어떤 모습으로 찾았던가 하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받았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에게서 단순하 지혜의 말을 찾아 얻었고, 누군가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었습니다. 찾는 만큼 얻지만, 헌신하지 못하면 찾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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