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심판을 마치 하느님이 꽁한 사람이라서 앙심을 품고 있다가 나중에 모아놓은 나쁜 행동 목록을 들이대면서 착한 행동 목록에 비교해서 나쁜 행동이 더 많으면 지옥으로 가두어 버리는 식으로 착각합니다.
즉, 원래는 나쁜 이들이 ‘지옥’이라는 곳에 가기 싫은데 하느님이 억지로 가게 만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반대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이 좋아서 지옥을 찾아갑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미워하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빛을 그들을 위해서 약간은 가리워 주시는 셈이지요.
차분히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한 3,19-21)
사실 이 안에 모든 설명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합니다. 그래서 어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감출 곳을 찾습니다.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수치스럽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헐벗은 사람, 영적으로 내세울 덕목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숨기에 바쁜 것입니다. 물론 그의 지상생활은 화려함과 부유함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이 드러나야 할 시기가 오면 그는 숨기에 바쁜 것이지요.
조금만 더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영혼에게 있어서 아주 강렬한 빛입니다. 빛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우리는 빛이 다가올 때에 바퀴벌레마냥 도망치기 바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좋다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고 입으로 주절댈 수 있지만, 실제 하느님이 다가오시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나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칠 곳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은밀하게 저질러온 말과 행동들이 수치스럽기 그지 없어 도망치느라 너무나 바쁜 것입니다.
심판은 어느날 다가올 결과물이 아니라 이미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나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어떠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는지가 ‘심판의 근거’이자 ‘심판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꽁한 세관 직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찬란한 빛이시고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장 머무르기 편한 곳을 찾게되는 것이고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의 은총을 조금은 거두어주시는 그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원래는 나쁜 이들이 ‘지옥’이라는 곳에 가기 싫은데 하느님이 억지로 가게 만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반대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이 좋아서 지옥을 찾아갑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미워하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빛을 그들을 위해서 약간은 가리워 주시는 셈이지요.
차분히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한 3,19-21)
사실 이 안에 모든 설명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합니다. 그래서 어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감출 곳을 찾습니다.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수치스럽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헐벗은 사람, 영적으로 내세울 덕목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숨기에 바쁜 것입니다. 물론 그의 지상생활은 화려함과 부유함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이 드러나야 할 시기가 오면 그는 숨기에 바쁜 것이지요.
조금만 더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영혼에게 있어서 아주 강렬한 빛입니다. 빛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우리는 빛이 다가올 때에 바퀴벌레마냥 도망치기 바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좋다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고 입으로 주절댈 수 있지만, 실제 하느님이 다가오시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 나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칠 곳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은밀하게 저질러온 말과 행동들이 수치스럽기 그지 없어 도망치느라 너무나 바쁜 것입니다.
심판은 어느날 다가올 결과물이 아니라 이미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나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어떠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는지가 ‘심판의 근거’이자 ‘심판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꽁한 세관 직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찬란한 빛이시고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장 머무르기 편한 곳을 찾게되는 것이고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의 은총을 조금은 거두어주시는 그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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