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니고 있는 직분이 나의 모든 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사제라서 절로 사제로 거룩해지는 게 아닙니다. 군대를 포함해서 10년간의 신학교 생활이 길었다고 해서 절로 나의 거룩함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논문을 써서 그만한 ‘학식’을 지닐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제직이라서 더 낫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직분은 확장 가능성이 그만큼 주어졌다는 것일 뿐이고, 확장 가능성이 넓어진 만큼 더 노력하지 않으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지게 됩니다. 작은 소주잔을 물로 채우는 데에는 약간의 물만 필요하지만, 큰 대야를 물로 채우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 법입니다. 같은 양의 물로 소주잔은 채울 수 있지만 대야는 채울 수 없습니다. 물의 양은 같은데 자신이 ‘선택’한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사제직’을 부러워합니다. 사제직이 ‘누릴 수 있는’ 것들만 바라보기에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 사제직이 그에게 요구하는 진보의 과정은 무시되고 맙니다. 그러나 각자는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사제직이 아니면 사제직에 대응하는 축복을 얻지 못하는가? 아닙니다. ‘성인’을 목표로 삼으면 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인의 그릇은 사제직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제도 성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성 사제직의 가능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데 왜 사제직분을 남성에게만 주는가 하는 것을 단순히 사제직에서 비롯하는 은총의 공유 가능성에만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전능 안에서 여성이 사제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 원하셨다면 남자의 몸에서 당신의 외아들이 탄생하게도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제직의 완성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 본다면 과연 지금 그렇게도 여성에게 사제직을 허락하라고 부르짖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제직을 선택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 듭니다.
왜 지금의 시대에 사제직은 여성에게 열리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설명해 내라고 한다면 저는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하느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교도권이 단순히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의 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낮아서 불가능했고 시대적인 분별로 아직까지도 완전한 때가 이르지 않아서 그러한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굳이 사제직을 따로 받지 않더라도 엄청난 기도와 희생으로 사제직을 넘어서는 은총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여성들은 수많은 사제들을 악의 위험에서 보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제직을 넘어서는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련과 고통 때문에 사제직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이들이 많았더라면 세상에는 은총이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모든 사제는 훗날 하느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 속에서 무엇을 해 내었는지 셈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직이라서 더 낫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직분은 확장 가능성이 그만큼 주어졌다는 것일 뿐이고, 확장 가능성이 넓어진 만큼 더 노력하지 않으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지게 됩니다. 작은 소주잔을 물로 채우는 데에는 약간의 물만 필요하지만, 큰 대야를 물로 채우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 법입니다. 같은 양의 물로 소주잔은 채울 수 있지만 대야는 채울 수 없습니다. 물의 양은 같은데 자신이 ‘선택’한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사제직’을 부러워합니다. 사제직이 ‘누릴 수 있는’ 것들만 바라보기에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 사제직이 그에게 요구하는 진보의 과정은 무시되고 맙니다. 그러나 각자는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사제직이 아니면 사제직에 대응하는 축복을 얻지 못하는가? 아닙니다. ‘성인’을 목표로 삼으면 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인의 그릇은 사제직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제도 성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성 사제직의 가능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데 왜 사제직분을 남성에게만 주는가 하는 것을 단순히 사제직에서 비롯하는 은총의 공유 가능성에만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전능 안에서 여성이 사제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 원하셨다면 남자의 몸에서 당신의 외아들이 탄생하게도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제직의 완성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 본다면 과연 지금 그렇게도 여성에게 사제직을 허락하라고 부르짖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제직을 선택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 듭니다.
왜 지금의 시대에 사제직은 여성에게 열리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설명해 내라고 한다면 저는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하느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교도권이 단순히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의 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낮아서 불가능했고 시대적인 분별로 아직까지도 완전한 때가 이르지 않아서 그러한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굳이 사제직을 따로 받지 않더라도 엄청난 기도와 희생으로 사제직을 넘어서는 은총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여성들은 수많은 사제들을 악의 위험에서 보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제직을 넘어서는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련과 고통 때문에 사제직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이들이 많았더라면 세상에는 은총이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모든 사제는 훗날 하느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 속에서 무엇을 해 내었는지 셈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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