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호세 6,6)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성경 안에서 꾸준히 등장합니다. 호세아 예언서에도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이고 ‘예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바치려고 합니다.
희생 제물과 번제물이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뭔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내다 바치고 손을 터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것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내가 벌어야 하는 것이라서 결국 나의 노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기 쉽게 됩니다. 즉 마음은 없이 내어 바치는 행위로 끝나버릴 수 있지요. 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것’은 여전히 나의 것이고 그 가운데 ‘하느님의 몫’만을 내어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와 하느님이 분리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신의’와 ‘예지’는 내가 전체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나의 내면이 변화해야 ‘신의’에 이를 수 있고, 하느님을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알 때에 비로소 ‘예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신의와 예지라는 것은 결국 나의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말하지요. 여기에는 나의 것과 하느님의 것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시간은 나의 시간, 하느님의 시간은 그 중 일부를 떼어줌, 나의 것은 나의 것 하느님의 몫은 그 중 일부를 떼어줌… 이런 분리가 결국 하느님과 우리를 떼어놓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 중의 일부만을 내어 놓으려는 구두쇠 심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내어바쳤어도 모자랐으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몫으로 쥐려고 애썼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허무한 것이었음을, 그것을 자발적으로 봉헌했을 때에 얼마나 찬란히 빛날 수 있었을 것인지를 늦게서야 깨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겠지요.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성경 안에서 꾸준히 등장합니다. 호세아 예언서에도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이고 ‘예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바치려고 합니다.
희생 제물과 번제물이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뭔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내다 바치고 손을 터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것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내가 벌어야 하는 것이라서 결국 나의 노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기 쉽게 됩니다. 즉 마음은 없이 내어 바치는 행위로 끝나버릴 수 있지요. 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것’은 여전히 나의 것이고 그 가운데 ‘하느님의 몫’만을 내어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와 하느님이 분리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신의’와 ‘예지’는 내가 전체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나의 내면이 변화해야 ‘신의’에 이를 수 있고, 하느님을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알 때에 비로소 ‘예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신의와 예지라는 것은 결국 나의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말하지요. 여기에는 나의 것과 하느님의 것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시간은 나의 시간, 하느님의 시간은 그 중 일부를 떼어줌, 나의 것은 나의 것 하느님의 몫은 그 중 일부를 떼어줌… 이런 분리가 결국 하느님과 우리를 떼어놓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 중의 일부만을 내어 놓으려는 구두쇠 심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내어바쳤어도 모자랐으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몫으로 쥐려고 애썼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허무한 것이었음을, 그것을 자발적으로 봉헌했을 때에 얼마나 찬란히 빛날 수 있었을 것인지를 늦게서야 깨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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