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마르 14,11)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가 잘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있지요. 이들의 내면은 어두움 그 자체입니다. 이들에게 ‘선’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선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이지요.
이들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을 두고 ‘선’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이기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하느님의 방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순간 악으로 더욱더 멀어져만 갑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가 바라는 사물, 바라는 일, 누군가에 대해서 바라고 있는 것이 정말 하느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그러기를 바라기에 그렇게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 하느님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상하고 좋은 것을 찾아 다니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우리는 천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우리를 중심에 두고 가치판단을 하는 데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방향전환’, 즉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작업이 바로 ‘회개’의 본질입니다. 단순히 사순시기 동안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는 게 회개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나의 내면이 어디를 향해서 가려고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더 오래 살아보려고 담배를 끊을 뿐이고, 마누라의 잔소리가 성가셔서 술을 줄이는 것은 ‘회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낫기에 하는 것 뿐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가 잘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있지요. 이들의 내면은 어두움 그 자체입니다. 이들에게 ‘선’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선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이지요.
이들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을 두고 ‘선’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이기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하느님의 방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순간 악으로 더욱더 멀어져만 갑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가 바라는 사물, 바라는 일, 누군가에 대해서 바라고 있는 것이 정말 하느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그러기를 바라기에 그렇게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에 하느님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상하고 좋은 것을 찾아 다니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우리는 천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우리를 중심에 두고 가치판단을 하는 데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방향전환’, 즉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작업이 바로 ‘회개’의 본질입니다. 단순히 사순시기 동안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는 게 회개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나의 내면이 어디를 향해서 가려고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더 오래 살아보려고 담배를 끊을 뿐이고, 마누라의 잔소리가 성가셔서 술을 줄이는 것은 ‘회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낫기에 하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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