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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계명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 5,19)

이 구절이 한때 저에게는 ‘화두’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생각이었지요. ‘잉? 작은 계명 하나라도 어기면 안되? 와~ 그럼 금육 철저히 지켜야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적지 않은 분들의 생각일 것이고 그런 분들이 생각 외로 꽤나 많을지도 모릅니다.

계명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계명을 문자 그대로의 규정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하느님께서 정말 바라시는 것’으로 이해하느냐의 차이에 핵심이 있습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은 ‘말이나 글로 표현된 규정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로지 표현된 사실을 그대로 곧이 곧대로 지키기만 할 뿐, 실제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이지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아들이 게임을 심하게 해서 규정을 정하기를 ‘게임하는 시간은 밤 9시 이전까지’이라고 정했더니 아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게임을 하는 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들은 분명 아버지의 규정을 말 그대로 지켰지만, 실제로는 전혀 지키지 않은 셈이지요. 왜냐하면 아버지의 원래의 걱정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규정에 대해서, 심지어는 십계명에 대해서도 전혀 엉뚱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라, 금육을 지키라는 식의 규정을 규정 그대로 해석하고 본래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하고 말지요. 살인하지 말라고 했더니 온갖 증오를 다 하면서 ‘나는 사람은 안 죽이잖아?’ 하고 변명을 해 댑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지요. 핵심을 바라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이 말하는 가장 작은 계명이라는 것은 바로 당신이 원하시는 방향에서 조금이라도 틀어지지 않게 하려는 근본적인 방향성을 의미하지 그것이 말로 표현된 그 규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서 ‘밥을 먹지 마시오’라고 적어 주었는데 그 사람이 실은 유럽인이어서 주식이 밥이 아니라 빵이라서 빵을 마음껏 먹는다면 그는 의사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도록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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