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예레 7,25)
우리는 예수님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났더라면 적어도 우리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 예수님을 뒤따랐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기적을 체험했더라면 분명히 뭔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의심하는 마음은 만일 그 일을 그대로 보았다 하더라도 의심할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의 전말을 잘 알고 있기에 그분을 당연히 알아볼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지금의 시대에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악습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와서 그 악습을 그만두라고 조언하는 이는 바로 예수님의 사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악습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을 쉽게 무시하고 마는 것이지요. 담배를 피는 사람에게는 담배를 끊으라 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술을 절제하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돈을 밝히는 이에게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 하고, 명예를 탐하는 이에게는 진정한 명예는 하느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권력의 개가 되어가는 사람에게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순종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을 너무나도 쉽게 무시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악한 행실을 유지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지만 ‘악’을 선호합니다. 미워해서는 안되고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증오에 빠져 살아가고, 남이 잘 되는 것에 마음을 다해 기뻐하기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그를 험담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매번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그런 그의 악습을 충고할 방법을 찾아 사람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그 예언자들을 매번 거절해 왔습니다.
우리가 처음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던 날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집트의 탈출 사건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하느님 자녀됨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징을 받고 세례의 물이라는 홍해의 바다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집트’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예레 7,26)
우리는 예수님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났더라면 적어도 우리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 예수님을 뒤따랐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기적을 체험했더라면 분명히 뭔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의심하는 마음은 만일 그 일을 그대로 보았다 하더라도 의심할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의 전말을 잘 알고 있기에 그분을 당연히 알아볼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지금의 시대에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악습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와서 그 악습을 그만두라고 조언하는 이는 바로 예수님의 사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악습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을 쉽게 무시하고 마는 것이지요. 담배를 피는 사람에게는 담배를 끊으라 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술을 절제하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돈을 밝히는 이에게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 하고, 명예를 탐하는 이에게는 진정한 명예는 하느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권력의 개가 되어가는 사람에게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순종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을 너무나도 쉽게 무시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악한 행실을 유지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지만 ‘악’을 선호합니다. 미워해서는 안되고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증오에 빠져 살아가고, 남이 잘 되는 것에 마음을 다해 기뻐하기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그를 험담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매번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그런 그의 악습을 충고할 방법을 찾아 사람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그 예언자들을 매번 거절해 왔습니다.
우리가 처음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던 날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집트의 탈출 사건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하느님 자녀됨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징을 받고 세례의 물이라는 홍해의 바다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집트’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예레 7,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