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8,23)
요한복음의 동문서답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 편으로는 합당한 대답을 하는 것이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래와 위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유다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위 아래는 흔히 생각하는 위 아래입니다.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땅이 있지요. 위로는 구름이 아래로는 흙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하는 위 아래라는 개념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위는 하느님을 말하고 아래는 그분에서 비롯된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창조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갖춘 이들입니다. 하지만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도, 그냥 피조물의 세계에 남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가시 세계, 하느님의 은총이 존재하지만 가리워져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살아가고 모든 것을 확실히 감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장님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감지하지 못하고 ‘기호’를 찾지요. 상대의 아름다운 얼굴은 좋아하면서 누군가의 아름다운 마음은 무시하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래의 것을 추구합니다. 더 많은 소유를 원하고, 더 높은 직위를 원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세상 속에서 더욱 뿌리박히는 셈입니다.
그러는 동안 예수님은 위에서 비롯된 삶을 증거하고 계시지요. 당신은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을 당신께 이끌어 들이지요.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세상에 천착해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요한복음의 동문서답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 편으로는 합당한 대답을 하는 것이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래와 위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유다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위 아래는 흔히 생각하는 위 아래입니다.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땅이 있지요. 위로는 구름이 아래로는 흙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하는 위 아래라는 개념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위는 하느님을 말하고 아래는 그분에서 비롯된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창조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갖춘 이들입니다. 하지만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도, 그냥 피조물의 세계에 남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가시 세계, 하느님의 은총이 존재하지만 가리워져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살아가고 모든 것을 확실히 감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장님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감지하지 못하고 ‘기호’를 찾지요. 상대의 아름다운 얼굴은 좋아하면서 누군가의 아름다운 마음은 무시하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래의 것을 추구합니다. 더 많은 소유를 원하고, 더 높은 직위를 원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세상 속에서 더욱 뿌리박히는 셈입니다.
그러는 동안 예수님은 위에서 비롯된 삶을 증거하고 계시지요. 당신은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을 당신께 이끌어 들이지요.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세상에 천착해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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