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예레 18,20)
단순히 ‘봐주는’ 수준이 아닙니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도리어 복을 빌어주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에게 예언자 직분을 맡긴 것 같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반드시 그 피해를 보상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것만도 아닙니다. 피해를 보상받고 나아가 그도 같은 일을 당해보게끔 하는 것이 세상이 바라는 바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면 피해만 보상받고 나머지는 참아 줍니다. 즉, 피해는 보상되었으니 내가 당한 것을 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피해를 입은 것도 잊으려고 합니다. 피해를 입을만 해서 입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는 피해를 입힌 사람을 걱정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영혼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어딜 가나 그런 일을 행할 것이고 결국 모두에게 증오를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의 잔도 그에게 쏟아질테니 그의 운명이 얼마나 안타까운지를 깨닫고 그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게 됩니다.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가 묘사한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단계들을 거쳐야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의 수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위의 단계들 중에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요? 아직도 첫번째 단계도 헤어나지 못했다면 갈 길이 상당히 먼 셈입니다.
단순히 ‘봐주는’ 수준이 아닙니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도리어 복을 빌어주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에게 예언자 직분을 맡긴 것 같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반드시 그 피해를 보상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것만도 아닙니다. 피해를 보상받고 나아가 그도 같은 일을 당해보게끔 하는 것이 세상이 바라는 바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면 피해만 보상받고 나머지는 참아 줍니다. 즉, 피해는 보상되었으니 내가 당한 것을 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피해를 입은 것도 잊으려고 합니다. 피해를 입을만 해서 입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는 피해를 입힌 사람을 걱정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영혼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어딜 가나 그런 일을 행할 것이고 결국 모두에게 증오를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의 잔도 그에게 쏟아질테니 그의 운명이 얼마나 안타까운지를 깨닫고 그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게 됩니다.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가 묘사한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단계들을 거쳐야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의 수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위의 단계들 중에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요? 아직도 첫번째 단계도 헤어나지 못했다면 갈 길이 상당히 먼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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