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람들은 자연 현상이나 동물들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 위대한 능력들에 강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그것들을 섬기는 오류를 범했지요. 태양신과 번개의 신, 독수리나 표범을 본딴 모양새를 조각해 두고는 거기에 숭배했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늘날은 전혀 새로운 현상의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에 자기들 스스로 능력을 부여하고 그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돈과 기술, 패션과
문화, 영화산업, 권력과 인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는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거기에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아가서 그것들을 섬기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에게 잔뜩 힘을 실어주고는 행여 자신이 거기에 선택을 받으면(실제로는 그저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운좋게 얻어걸린 것 뿐이지만…) 엄청난 영광을 취득했다고 착각을 합니다.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그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우상은 생명을 만들 능력도, 스스로 생명을 지니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것인데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거기에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적인 우상숭배는 종교적 성상을 만든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둔한 사람들은 가톨릭의 성상 숭배 문화를 비판하지만(물론 그 중에는 비판받을 만한 부분도 존재합니다.) 보다 실제적인 우상숭배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신문, 잡지, 인터넷 기사 안에는 이러한 우상숭배의 흔적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늘날은 전혀 새로운 현상의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에 자기들 스스로 능력을 부여하고 그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돈과 기술, 패션과
문화, 영화산업, 권력과 인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는 인간들의 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거기에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아가서 그것들을 섬기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에게 잔뜩 힘을 실어주고는 행여 자신이 거기에 선택을 받으면(실제로는 그저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운좋게 얻어걸린 것 뿐이지만…) 엄청난 영광을 취득했다고 착각을 합니다.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그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우상은 생명을 만들 능력도, 스스로 생명을 지니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것인데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거기에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적인 우상숭배는 종교적 성상을 만든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둔한 사람들은 가톨릭의 성상 숭배 문화를 비판하지만(물론 그 중에는 비판받을 만한 부분도 존재합니다.) 보다 실제적인 우상숭배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신문, 잡지, 인터넷 기사 안에는 이러한 우상숭배의 흔적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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