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부릅뜨고 누구를 죽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지요. 처음에는 다 순진무구하게 태어납니다. 순수한 영혼으로 태어나지요.
자라면서 이런 저런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인격을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인이 되거나 악인이 되거나 하지요. 어찌보면 애매모호한 케이스도 있는 듯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가르치심에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시작은 모두 ‘새로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세상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겠노라고 다짐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첫 다짐이 언제나 항상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탄생의 순간 순진무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선한 마음이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다시 세상과 부딪히게 되면서 이런 저런 변화를 겪게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매일같이 다가오는 도전 속에 다시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표현대로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고 고달픈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친 물살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어 결국 상류에 도달하는 연어가 있는가 하면 그 진행 과정 중에 지쳐 나자빠지고 또 여러가지 포식자들의 습격에 당하는 연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우리가 거슬러가는 물길의 어느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상류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고 최종적인 산란을 위해서 몸부림쳐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묵시 2,5)
자라면서 이런 저런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인격을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인이 되거나 악인이 되거나 하지요. 어찌보면 애매모호한 케이스도 있는 듯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가르치심에 따르겠다고 나선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시작은 모두 ‘새로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세상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겠노라고 다짐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첫 다짐이 언제나 항상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탄생의 순간 순진무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선한 마음이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다시 세상과 부딪히게 되면서 이런 저런 변화를 겪게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매일같이 다가오는 도전 속에 다시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표현대로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고 고달픈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친 물살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어 결국 상류에 도달하는 연어가 있는가 하면 그 진행 과정 중에 지쳐 나자빠지고 또 여러가지 포식자들의 습격에 당하는 연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은 우리가 거슬러가는 물길의 어느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상류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고 최종적인 산란을 위해서 몸부림쳐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묵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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