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람들은 마더 데레사를 선교에 활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그분은 하느님과 가장 긴밀했고 나아가 이웃들에게 크게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대동합니다. 왜냐하면 교황님의 말씀과 행적에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마음이 느껴지고 이웃을 향한 뭔가 남다른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분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교회가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를 아무리 내세운다고 해서 그걸 알아채고 다가올 사람은 드물고, 교회가 황제보다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던 어느 교황을 내세운다고 그걸 보고 교회에 다가올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결국 내세우게 될 이들은 ‘가장 많이 사랑한 이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위치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안에서 이루어야 할 것은 감투도, 명예도, 권력도, 삶의 윤택함도 아닌 ‘사랑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 외에 다른 수많은 것들이 첨가될 수 있겠지만 이 핵심을 놓쳐 버린다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분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교회가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를 아무리 내세운다고 해서 그걸 알아채고 다가올 사람은 드물고, 교회가 황제보다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던 어느 교황을 내세운다고 그걸 보고 교회에 다가올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결국 내세우게 될 이들은 ‘가장 많이 사랑한 이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위치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안에서 이루어야 할 것은 감투도, 명예도, 권력도, 삶의 윤택함도 아닌 ‘사랑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 외에 다른 수많은 것들이 첨가될 수 있겠지만 이 핵심을 놓쳐 버린다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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