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혼자 산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리 하라고 하느님이 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11세기 당시 교회의 분별에 의한 결정이었지요. 교회 재산의 세습과 같은 일들을 막기 위해서 단행한 조치인 셈입니다.
이 독신제가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내려오면서 자연스레 ‘정결’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것인데도 마치 독신은 정결하고 독신이 아니면 정결하지 못하다는 엉뚱한 인식이 우리 안에 내재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성’과 ‘성생활’이라는 것이 감추어지고 금기시되기 시작했지요. 신부도 결국 남자고 수녀도 결국 여자인데 말이지요.
여기서 정결이라는 것을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결’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미친듯한 금욕’이 아니라 한 주인에게 마음을 두고 그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는 서로에게 충실한 것이 정결한 것이며 사제나 수도자는 하느님에게 온전한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결인 셈이지요. 성생활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건 외적인 표지일 뿐입니다. 어느 소녀가 부당하게 강간을 당했다고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건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 소녀는 여전히 정결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제가 하느님 외에 돈과 명예와 권력을 탐하고, 수도자가 주님 외에 다른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정결에 정 반대되는 상태이지요.
독신이라는 것은 여전히 ‘필요’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이 필요는 아직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제는 홀로 살면서 아무래도 아내와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에 그만큼을 더 신자들에게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마다 솔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사제들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쏟는 열정만큼 신자들을 돌보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이라도 못하는데 이거라도 해야지 하면서 쉽게 빠져드는 행위들 가운데에는 일반 사람이라도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들도 있지는 않은지. 자기 자식이 일반 대학생으로서 담배에 쩔어가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 꾸중을 할 거면서 본당의 ‘학사님’이 그렇게 하면 그저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은, 그걸 거룩한 것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는 ‘방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에게 헌신할 사랑을 하느님에게 돌릴 때에 ‘덕’이 되고 거룩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차이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