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목적과 종류의 다이어트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목적은 ‘음식을 덜 섭취해서 살을 좀 빼어 좋은 몸매를 유지하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의학적인 필요에 의해서 식단을 조절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도 음식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대체로는 멀쩡한 사람이 몸매가 좀 불었다는 이유로 평소에 먹던 것에서 음식량을 줄이는 것입니다.
언뜻 외적으로는 교회의 ‘극기’와 비슷해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육신의 욕구를 절제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내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극기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 사이에 주도권을 원래의 주인인 영혼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다이어트라는 것은 원래의 주인이 주도권을 넘겨받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정반대로 육신의 요구를 희생하면서까지도 “마른 나의 몸을 보면서 찬사를 던져 줘!”라고 외치고 있는 내면의 허영심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지요.
의학적인 목적으로 하는 다이어트,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로 과한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다이어트는 필요한 것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이어트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실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살이 찌는가 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마실 술을 다 마시고, 이런 저런 밤모임에 나가서 절제 없이 놀고 하면서도 마른 체형을 원하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려는 것이 근본 문제인 셈이지요.
결국 다이어트의 왕도는 억지로 음식을 줄이거나 무리를 할 게 아니라, 먼저 무절제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왕창 다 먹으면서 그만큼을 다시 빼려고 하니 결국 몸도 마음도 무리가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는 요요현상이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구요.
언뜻 외적으로는 교회의 ‘극기’와 비슷해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육신의 욕구를 절제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내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극기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 사이에 주도권을 원래의 주인인 영혼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다이어트라는 것은 원래의 주인이 주도권을 넘겨받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정반대로 육신의 요구를 희생하면서까지도 “마른 나의 몸을 보면서 찬사를 던져 줘!”라고 외치고 있는 내면의 허영심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지요.
의학적인 목적으로 하는 다이어트,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로 과한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다이어트는 필요한 것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이어트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실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살이 찌는가 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마실 술을 다 마시고, 이런 저런 밤모임에 나가서 절제 없이 놀고 하면서도 마른 체형을 원하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려는 것이 근본 문제인 셈이지요.
결국 다이어트의 왕도는 억지로 음식을 줄이거나 무리를 할 게 아니라, 먼저 무절제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왕창 다 먹으면서 그만큼을 다시 빼려고 하니 결국 몸도 마음도 무리가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는 요요현상이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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