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면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술을 진탕 먹고 다음날 크게 고생을 하고 나서도 다시 시간이 지나 술상을 받으면 술이 맛깔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반복되는 오류 속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복이 연이어질수록 우리는 그가 배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내칠수도 없습니다. 그가 숨쉬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아직 그에게 희망을 허락하신다는 말이니까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건강하고 튼튼한 양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오신 분이시니까요.
하지만,
조심해야 할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엇나가는 이들이고, 나아가서 나약한 이들을 망가뜨리는 이들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이들은 이런 이들을 살려 보겠다고 함부로 나서다가 도리어 자신들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함께 무너져내려 버리곤 합니다. 무서운 세상이지요. 특히나 이런 자들은 자신의 먹잇감을 찾아서 교회를 헤메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약아서 잘 속아넘어가지 않으니까요.
반복되는 오류 속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복이 연이어질수록 우리는 그가 배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내칠수도 없습니다. 그가 숨쉬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아직 그에게 희망을 허락하신다는 말이니까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건강하고 튼튼한 양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오신 분이시니까요.
하지만,
조심해야 할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엇나가는 이들이고, 나아가서 나약한 이들을 망가뜨리는 이들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이들은 이런 이들을 살려 보겠다고 함부로 나서다가 도리어 자신들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함께 무너져내려 버리곤 합니다. 무서운 세상이지요. 특히나 이런 자들은 자신의 먹잇감을 찾아서 교회를 헤메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약아서 잘 속아넘어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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